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용서·빌레몬서

용서의 방법 (빌레몬서 22-25절)

Andy1954 2023. 2. 3. 15:02

하루는 한 청년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예수님과 마귀와의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목사님은 그 질문의 의도를,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되물었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이요?”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저의 마음 속에 들어오시는데, 얼마나 걸립니까? 

또, 마귀가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데, 얼마큼의 시간이 필요한지 알고 싶습니다.”

그 청년은 평소에 자신이, 신앙 위에, 굳게 서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에, 어이없게 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버리는,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너무나도 한심한 생각에, 목사님을 찾아와서, 그러한 질문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목사님은, 그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청년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형제님, 캄캄한 방에, 불을 한 번 켜 보십시오. 

그러면 방안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어두움은 물러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어두움이 영원히 사라져 버립니까? 아니지요. 

다시 불을 꺼버리면, 방안에는 어두움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임재하시면, 그 순간에 마귀는, 우리 마음에서 달아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시면, 마귀는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기 위해서,

금방 찾아올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과 마귀 사이는, 순식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이렇게 당부를 하셨습니다.

“ 예수님께서, 항상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달라고 기도하세요. 

이것이 승리의 삶을 살게 하는, 비결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 충만한 사람이 따로 있습니까? 마귀와 죄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사람이 따로 있던가요?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산다고 생각하지만, 방심해 버리면,

순간에 죄의 유혹에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깨어 기도하면서, 우리 마음을 잘 지켜야 할 것입니다.

누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다스리느냐에 따라서, 삶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 속에 계시면서, 우리 마음을 다스리시면, 우리 마음은 빛과 사랑이 넘치는,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마귀가, 우리 마음을 지배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움과 증오에 불타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악한 마귀가 틈타지 못하도록, 마음을 잘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이제 빌레몬서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있는지, 리에게 용서의 방법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내 마음 속에, 미움의 찌꺼기가 남아있습니까?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오네시모가 도사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미움의 찌꺼기를 완전히 씻어버리고, 

우리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오네시모를 깨끗이 용서하고, 

우리 마음에 빛과 사랑이 넘치는, 천국을 소유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토록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잠깐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풀 것은 풀고, 가야 할 것입니다. 

맺힌 채, 하나님 앞에 서시겠습니까? 그러면 부끄러움과 책망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계속해서 그리고 반복적으로 “너의 오네시모를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순종해서, 용서할 것은 용서하고, 맺힌 것은 다 풀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지금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시면, 골로새를 방문할 것이라고, 그의 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골로새를 방문할때, 빌레몬의 집에 머물것이니, 처소를 예비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울이 머물 곳이 없어서, 그런 부탁을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의 의도는, 다른데 있습니다. 

바울이 골로새를 방문해서, 빌레몬의 집에 머물게 되면, 무엇을 알게 됩니까?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했는지, 하지 않았는지가, 자동적으로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빌레몬이 그의 종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기도의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만일 빌레몬이, 그의 종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런 기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약 5장 16절의 말씀을 보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빌레몬과 그의 가족들, 또 그의 집에서 모이고 있는 골로새 교회 모든 성도들이, 

사도 바울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골로새를 방문하고 또 빌레몬의 집에 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않고, 어떻게 바울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그것이 선결되어야지,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속히 우리를 찾아오셔서, 맺힌 것을 다 풀었는지, 오네시모를 용서했는지,

용서하지 않았는지, 직접 보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 관계가 화목한 사람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자기의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못하고, 맺힌 채로 살아가고 있다면,  

이러한 기도를 하는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머지않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좀 더 수월하게,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 주변의 증인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 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의 사람들과 더불어,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하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워하고 복수하는 심정으로, 우리의 오네시모를 헐뜯고, 비난하고, 욕하게 되면, 

우리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하지, 결코 편치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23∼24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지금 여기에, 다섯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들은 빌레몬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또 빌레몬도, 그 다섯 사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이 잘 아는, 다섯 사람의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다섯 사람도, 바울과 똑같은, 소원과 기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소원과 기도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면, 이 다섯 사람은 그 소식을 듣고, 바울과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의 감화를 끼치게 됩니다. 

그러나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비방하고, 복수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우리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추이고 있습니까? 

그 사람 참 훌륭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야. 그 사람 곁에만 가면, 절로 엔돌핀이

솟아나, 마음이 평안해져.” 이와 같은 평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 주변에, 허다한 증인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이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좀 더 따뜻하고, 열린 마음, 여유로운 마음, 포근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배려해 줄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서, 나의 오네시모를 용서하려 해도, 내 의지, 내 능력, 내 인격,

내 성품을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은혜만이 그것을 가능케 합니다. 

그것이 25절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할찌어다.”

지금 사도 바울은, 빌레몬과 그의 가족들과 그의 집에서 모이고 있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혜만이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육신의 힘으로는,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육신은 본능적으로, 복수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법으로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법은 본질적으로, 공의와 정의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은혜만이,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의 나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격, 힘, 의지, 교양으로서는, 오네시모를 진정으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심령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용서의 방법을, 세 가지로 일깨워주었습니다.

첫째로,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잠시 잠깐입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맺힌 것은, 이 땅에서 다 풀고 가야합니다.

둘째로, 우리 주변에는 허다한 증인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네시모를 용서하면, 그들도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못하면, 마음 아파하며,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내 힘으로 용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함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늘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빌레몬서를 마감하면서, 

용서와 관련해서, 예수님이 친히 주신, 말씀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마태 6장 14∼15절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 18장 35절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요한 13장 34∼35절의 말씀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하나님은 빌레몬서를 통해서,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것이, 남아 있다면,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로, 다 용서하고 풀어서

빛과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주님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는, 주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