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자신이 원하지않는, 광야와같은 메마르고 험한길을 걸어 갈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이 아무런 의미없는
시련을 주의 백성들에게 허락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을 할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가데스 바네아'라는 곳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는 불과 사흘길 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들을 곧장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셔서 사십 년 동안
이나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보내셨습니까?
그렇다고 하나님의 본심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워하고 괴롭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예레미야 애가 3장33절에서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생하고 근심하는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는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본심이 무엇입니까?
5절 말씀을 통해 그뜻을 알수 있습니다. "너는 사람이 그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
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간혹 부모가 자녀를 징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자녀를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좀 더 성숙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광야에서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신 것입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본심을 알수가 있습니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
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이 말씀의 포인트가 무엇입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본심은 택하신 백성들을 훈련시키시고 연단하신 후에 복을
주시기 위해서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시간 말씀을 통하여 우리로 광야길을 걷게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면서,
그것을 깨닫고 순종함으로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받고 누리실수 있는 우리가
되시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기 위해서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그런데 16절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이, 교만한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겸손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낮아지고 겸손할때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겸손
해야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말씀에 불순종하고 교만하면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신명기 8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만은 무엇이고 겸손은 무엇입니까?
교만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모든게 내가 잘나고 능력이 있어서 잘된 줄 아는 것입니다.
반면에, 겸손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하나님을 잊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두렵건데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교만할때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기가 쉽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형통하고 잘될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기가 쉽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12∼13절 말씀에 있습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그러니까 우리가 잘되고 형통하고 풍부할 때
하나님을 잊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가 17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또 두렵건데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무슨 뜻입니까? 내가 잘나서 잘된 줄로 생각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내 힘과 능력으로 잘된 줄 알고 교만에 빠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겸손은 내가 형통할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하나님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바로 18절에서 겸손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늘 겸손함으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넉넉하고 형통한 삶을 살아 왔다면 그것은 내가 능력이 있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난했을 때에는 낮아지고 겸손했던 사람도 부유하게 되어서는
겸손을 버리고, 교만한 삶을 사는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으면 더욱 겸손하고 감사의 삶을 살아야지 그것이 교만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이런 사람은 아주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우리의 교만을 그토록 싫어하십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바로 교만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길이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애굽의 왕, 바로가 그러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라고
말했을때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관대"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만죄입니다.
베들레햄에 태어난 아기예수를 경배하러온 동방박사들에게 나도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며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던 헤롯 임금이 그러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바리새인들도 교만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앞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만을 철저하게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 겸손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억지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
십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기록한 모세도 그러했습니다.
그가 애굽의 궁중에서 40년 동안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혈기와 자만심에 가득차서 하나님을 잊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세를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로 내모셨습니다. 40년동안 미디안 광야에 살면서 철저하게 낮아졌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낮추신 것입니다. 그가 겸손하게 되니까 그때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위대한 종'으로 사용해 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해서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2절 하반부를 보겠습니다. "너를 시험하사 네마음이 어떠한지, 그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때때로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시험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2장을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 모리야 산을 향하여 출발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이유를 달지도 않았으며 주저거나 망설이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그런 시험이 없었다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어떻게
알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 의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욥도 시험하셨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그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욥은 극심한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욥기1장 22절에보면 이모든 일에 욥이 범죄치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했다
고 했습니다. 욥에게 이런 시험이 없었다면 그믿음이 얼마나 순수한지 알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욥이 시험을 잘 이겨냄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갑절의 복'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운데 지금 힘든 광야 길을 걷고 계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이 시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순수하고
진실한지 보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시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더욱더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성도들 가운데에도 살아가면서 "힘들다, 못살겠다, 죽겠다" 이런 말들을 자주하는 분들은
오늘 본문 1절 말씀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는 말씀을 다시 한번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축복의 땅이 약속의 땅이 우리 앞에 활짝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와같이 믿을수 없는 가운데 순종함으로 기적을 보여준 사건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벳새다, 빈 들판에 오천 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무리에게 나누어 주어라,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먹을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남은 조각을 거두니까, 열두 광주리가 차게 거두었습니다.
이처럼 주의 명령에 순종하면 사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도 우리가 잘아는 사건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습니다. 물살만 보아도 모든 것을 훤하게 알았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배를 바닷가에 대고 빈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어부인 베드로에게 목수일을 하셨던 예수님이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기는 밤중에 잡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낮에는 고기가 잘 잡히지 않습니다. 깊은 물에서는 고기가 잘 놀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침이 되지 않았습니까?
거기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헛탕을 치고 그물을 깨끗하게 씻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다시금 깊은 곳에 들어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것입니다.
평생 고기잡는 일을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베드로는, 우리들이 밤이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라며 순종했습니다.
말씀에 순종할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 길을 걷는 것처럼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고 계십니까?
그럴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더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순종하면 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삶이 풍요롭고 번성하게 될것입니다. 젖과 꿀이흐르는 축복의 땅에 들어갈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이와같은 축복의 역사를 다 누리고 체험하실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사는사람은 나를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사람이 살수 있는 곳입니까? 살수 없는 곳입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인 의식주 조차도 해결할수 없는 곳이 바로 '광야' 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것도 무려 사십 년 동안
이나 그곳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나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 살면서 농사도 지을수없고 목축도할수
없었기 때문에 그저 하나님께 구하면서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이 굶주릴 때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셔서 먹이셨는데 만나는 땅의 소산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농사지어서 수확한 양식이 아닌 것입니다. 그들이 배고플 때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음식입니다. 그리고 목말라 할때는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하셔서
갈한 목을 축여주셨습니다.
갈 길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낮에는 '구름기둥' 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4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광야 길을 사십 년이나 헤매는 동안에, 의복이 해어지지 않게 하셨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먹고사는 문제뿐 아니라, 건강까지도 책임져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살이가 갈수록 더 힘들고 어려우십니까?
나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잡혀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내가 떡을 움켜쥐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다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아무리 많은 떡을 움켜쥐고 있어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해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창고에 곡식을 가득 쌓아 놓았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사업을
잘해서 돈을 많이 벌었으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12장 20절에서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그 재물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같이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인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나간 날들을 돌이켜 볼때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셨다는 사실을 아무리 잊으려해도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붙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손을 붙들어 주시고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순간도
우리를 잊지 아니하셨습니다. 늘 우리를 기억해 주시고 생각해 주시면서 변함없는 사랑으로
늘 보살펴 주셨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낮추시고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하신후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둘째로, 우리의 순종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해서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시기 위해서 시련을 주시고 연단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게 하시기 위해서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
보며 의지하는 자가 곧 말씀으로 사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하여 우리로 광야길을 걷게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을 기억해주시고 생각해주시는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고 의지하며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축복의 땅 약속의 땅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는 우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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