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사랑·고전 13장

사랑이 없으면, (고전 13장 1-3절)

Andy1954 2023. 2. 23. 12:20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tabula rasa"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래는 라틴말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 말은, 글자가 쓰이지 않은 석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이나 교육학에서는

"백지상태의 마음" 또는 "정해진 의견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순수하고, 순결한 'tabula rasa'에, 하나님께서 주신,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이 깊이 새겨지기를, 먼저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기에 힘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랑으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써, 우리 각자가, 사랑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 또

하나님 아버지께, 큰 영광을 돌리는, 복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시간 "사랑장"이라고 하는,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의 중요성을,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우리의 삶 속에서, 매 순간마다,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왜, 사도 바울이 사랑장을 기록하게 되었겠습니까? 

한 마디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의 그릇된 '은사관'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은사관을 바로 잡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위대한 고린도전서 13장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한 갑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골동품 수집하는 것을, 자신의 삶의 목적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골동품이 있으면, 전 세계 어디라도 쫓아가서는, 그것을 사들였습니다. 

그는 이미 많은 골동품을,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골동품 잡지를 뒤적거리다, 정말 마음에 드는, 도자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옛날 유럽의, 어느 왕가에서, 사용하던 도자기였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그의 가슴은, 마구 뛰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수를 쓰든지, 저것을 내 손에 넣어야지."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게 되었습니다. 

도자기의 그림이 실린, 잡지사에 연락해서, 그 도자기가, 누구의 손에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잡지사에서는,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았습니다. 

심지어 그는, 도자기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서, 유럽까지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도자기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미술잡지를 뒤적거리다, 자기가 찾고 있는, 도자기의 행방을, 드디어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그 도자기는, 미국의 어느 억만장자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소장자의 이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잡지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얼른 창고에 가서,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골동품들을 자세히 조사해 보았습니다. 

과연 그곳에는, 자기가 애타게 찾던, 도자기가 있었습니다. 

자기가 이미, 그 도자기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한 번도, 눈 여겨 쳐다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엉뚱한데서, 그것을 찾느라고, 시간과 물질과 정열을, 낭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바로 이런것 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다 소중한 은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눈에 더 좋아 보이고, 더 커 보이는, 은사를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들 각자에게, 소중한 은사를 주셨습니까? 

그것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받은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섬기는 데 사용하지 않고, 자신을 과시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안에는, 은사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더러는 은사 때문에, 자만에 빠지는 사람도 생겼고, 반대로 은사 때문에, 열등감 속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잘못된 은사관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 위대한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그러나 받은 은사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직분도, 다를 수가 있습니다. 

섬기는 일도,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다 소중한 일군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느냐는 것입니다. 

동기는 오직 한 가지,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동기가 되지 못하면, 많은 일을 하고, 아무리 큰 일을 한다 할지라도, 의미가 없습니다. 

예컨대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서 한다거나, 또는 자신의 어떤 육신적인 이익과 만족을 위해서, 

섬기는 일이 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세 가지로 사랑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둘째로,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가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셋째로, 사랑이 없으면, 우리에게 얻어지는 유익도 없습니다. 

남에게 주는 것도 없고, 자신도 아무것도 아니고, 또, 자신도 얻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랑은, 중요한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살펴보면서, 매 순간마다, 사랑을 힘써 실천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우리에게 사랑이 없으면,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여기에 방언의 은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방언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배우지 않고, 알지도 못하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마침, 예루살렘에는 명절을 맞이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소아시아에 살던 사람들도 왔고,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살던 사람들도 왔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더러는 유럽의 말로, 또는 소아시아의 말과 아프리카의 말로,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들을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방언의 은사' 입니다. 

 

고전 14장 18절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도, 방언의 은사를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방언의 은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천사의 말' 을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린도후서 12장에 나오는,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째 하늘, 곧 낙원에 이끌려갔던, 신비한 체험이 있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이 쓰는,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신비하고, 황홀한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 

1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여기에 두 가지, 악기가 나옵니다. 구리와 꽹과리 입니다. 

이것들은, 그 옛날 이교도들이, 이방 신전에서, 주로 사용하던 악기들이었습니다. 

잠자는 신들을 깨우거나, 악령을 쫓기 위해서, 그들은 구리를 두드리고, 꽹과리를 울리면서,

소리 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이상야릇한 괴성을 발했습니다. 

"따따따 따 라라라라…" 계속해서, 그런 소리를 지껄여 댔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방언을 한다고 하면서, 이교도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깨우치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쓰는 사람의 방언뿐만 아니고, 하늘에서 쓰는,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이교도의 모습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주는 것이 없습니다.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말하는데 있어서, 아무리 큰 은사를,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의 말속에, 사랑이 담겨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변이 부족하고, 표현력이 없고, 어눌하다 할지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이 담긴 말을 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격려하며, 위로할 수 있습니다. 평안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마음, 따뜻한 마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말 한마디라도, 사랑이 담겨져 있는,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에게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런 가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2절 말씀을 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지자가 예언한다고 해서, 자기 생각, 자기 뜻, 자기주장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예언의 은사에는, 뒤따라오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 비밀과 지식을 아는 것입니다. 

비밀은,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지식은, 이미 알려진 것입니다. 

남에게 감추어진, 비밀을 알고, 남에게 없는 지식을, 소유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수반된다면, 놀라운 기적을, 가능케 합니다. 

산을 옮길만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치 못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2절 말씀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자기는 대단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아무런 존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값어치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본문 2절에서 "모든"이라는 단어를, 몇 번 사용했습니까? 

"모든 비밀," "모든 지식, " "모든 믿음." 3번이나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사랑이 빠져버리면, 그 결과가, 무엇으로 바뀌어져 버립니까?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nothing)." 무로 바뀌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중요성입니다. "모든"에는 사랑이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 요나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요나야, 너는 니느웨로 가서, 쳐서 외쳐라. 앞으로, 사십 일이 지나면, 그 성이 무너지리라."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버렸습니다. 

왜,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았습니까? 

자기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 그에게는 있었습니다. 

그러면 자기의 사역이, 실패할까 봐, 두려워했습니까?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그는 자기의 사역이, 성공할까 봐 우려했습니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비밀과 하나님의 지식을 알았습니다. 

그에게는 예언하는, 능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리라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까? 그에게는,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니느웨 백성들에 대한, 사랑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셔야 했습니다.

 

또, 다른 선지자, 발람을 생각해 보십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모압 땅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입니다. 

모압 왕, 발락이, 사람을 보내서, 선지자 발람을, 초빙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리칠, 계략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발람 선지자는, 겉보기에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민수기 24장 16절에 보면,

그는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이, 있었습니다. 

또, 민수기 24장 17절에 보면,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라고 했습니다. 

그는 메시야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탄생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대단한 예언이지 않습니까? 선지자 발람에게는, 예언하는 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과 지식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리라는, 믿음도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람 선지자는,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어버리고 말았습니까? 

그는 불의한 삯을, 받았습니다. 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모압 왕 발락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락시킬, 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서, 모압의 여자들과 음행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염병으로 죽었습니다. 

나중에 발람 선지자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분노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칼에 맞아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 대단했던 선지자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은, something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nothing 입니다, 

곧,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언하는 능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또, 모든 비밀, 모든 지식을, 알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도 없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만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값어치 있는, 존재입니다. 그만큼 사랑은, 소중하고, 귀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풍성한 사랑을 심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에게 사랑이 없으면, 우리에게 얻어지는, 유익이 없습니다.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기에 보면, 두 가지, 은사가 나옵니다. '구제와 헌신' 의 은사입니다. 

세상에 자기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써서 , 구제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은사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또, 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면서,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헌신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이 없는, 구제와 헌신의 행위는, 

그 당사자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구제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구제할 때 회당이나 거리에서, 나팔을 불어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행위를,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칭찬을 받았습니까? 구제하고 나서, 복을 받았던가요?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외식하는 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왜, 그러셨겠습니까? 

구제를 하기는 했지만, 그 동기가, 순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구제를, 사랑으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영광 받기를 원했습니다. 

자기들을, 내세우기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 구제를 하고서도, 복은 커녕, 책망만 듣고 만 것입니다. 

구제가 사랑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들 소유의 땅을, 팔았습니다. 땅값을, 사도들의 발앞에, 갖다 바쳤습니다. 

구제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벌을 받았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사랑으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하니까, 자기들도 하기는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땅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물질에 대한, 애착이 생겼습니다. 

일부는 떼어놓고, 나머지가 다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구제를 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복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벌을 받아서, 죽고 말았습니다. 

구제하고 나서도, 아무런 유익이,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큰 헌신을 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를, 한번 생각해 보싶시다. 그들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임금이 만든, 금신상 앞에서, 절하지 아니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지움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주셔도 좋고, 구해주시지 않아도 우리는 상관없습니다." 

이처럼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뜨거운 풀무불 속에 있는, 그들을 지켜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 속에 던지움을 당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 번 가정해 보십시다. "이 못된 놈들아, 천벌 받아 마땅한 놈들아! 

너희들이 우리를, 풀무불 속에 집어 던지고서도, 안전할 줄 아느냐?"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증오스런 모습을, 보였더라면, 그들이 자기 몸을, 불사르는데

내어준다 할지라도, 그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구제와 헌신에, 사랑이 빠져버리면,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서, 사랑의 중요성을, 세 가지로 일깨워주었습니다. 

첫째로, 사랑이 없으면, 남에게 주는 것이 없습니다. "The loveless person gives nothing." 

둘째로, 나 자신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The loveless person is nothing." 

셋째로, 나도, 얻는 것이 없습니다. "The loveless person gains nothing."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이 없습니다. 예언하는 능도, 없습니다.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지도 못합니다.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구제와 헌신의 은사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랑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남에게, 유익을 줄 수 있으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값진 삶이 됩니다. 

그리고 섬기는, 모든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랑으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힘써,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열매를 많이 맺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몇 번 나올 것 같습니까? 

많이 나올 것 같지만, 아홉 번 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사랑은, 말과 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가운데, 나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실천이 있어야 되고, 사랑에는, 열매가 있어야 됩니다. 

 

사도 바울이, 가르쳐주신 교훈을, 한 문장으로 만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Life - Love = 0"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아무리 많은 것을 바치고, 

아무리 큰 일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남에게 유익을 주지도 못하고, 나도 얻는 것이 없고,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값없는 삶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사랑이 그만큼 중요한 것을 깨달았으면, 이제 우리 모두 힘써,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