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 마디로 그것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참된 영생을 누리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도둑이 오는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처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은 우리가 영생을 얻되 참된 영생을 얻고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죄많은 인생들은 서로 영광을 취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며, 영생을 얻기위하여 주님께 오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을 대체로 다음과 같은 3종류의 사람으로 분류해 볼수
있습니다.
첫째는 불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내가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며 살다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땅에서 인생의 종착역을 전혀 모르는 정처없는 나그네처럼 인생을 살다가는
아주 불행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다음은, 안타까운 인생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과 같이 방황하며, 무의미 하게 인생을 살다가, 죽을 때가 임박해서야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겨우 깨닫고 몸부림치며 안타까워 하다가 떠나는 인생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한편 강도와 같이 실패의 인생을 살다가 회개하고 겨우 낙원에
간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행복한 인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과 영생을 얻고 삶의 가치와 목적을 발견하고, 예수 안에서 감사와 기쁨
으로 우리의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바라보고 찬송하며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며 은혜롭게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어떤 인생을 살고 계십니까?
이시간 우리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감으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답고, 멋진 축복의 삶이 펼쳐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하는 바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대학 정문에, 이런 글귀가 새겨진 돌비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참으로 이상한 글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대학의 정문에 이런 글이 쓰여진 이면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법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어느 한 청년이 교수를 찾아와, 자신은 앞으로 법학을 공부 하고싶다고,
고 자신에 찬 말로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교수가 점잖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공부를 한 후 무엇을 하겠는가?”
“전 대학을 졸업하고 아주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변호사 고시에 합격하여 훌륭한 변호사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다음에는 가난한자를 돕고,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낳아 키우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미며 살을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계속되는 같은질문 앞에 청년은 또 대답합니다. “노년을 맞이하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러자 청년은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생각한 끝에,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저도 죽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청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인생은 몇 백 년이라도 살 것처럼 의기양양해도 백년도 채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우리는 이 말만 깊이 묵상해도, 허무한 인생에 목표 삼지 않고 더 영원한 것을 찾는 지혜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참된 영생을 얻어 풍성히 누릴 수 있을까요?
1.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읽은 요한 17장3절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것이니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영들이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영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한 영인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요한일서 4장 1-2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것”
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안다는 것은,
진리와 생명되신 예수님께서 이땅에 성육신하셔서, 죄를 대속 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 하셨을 뿐 아니라, 심판주로 재림하실 그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이 영생입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도 영생이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이 참된 영생입니다.
영생은 단순한 영원불멸을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옥에서도 영원히 살기 때문입니다.
마태 25장31-46절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영벌과 영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이 말하는 영생이란 천국은 물론 하나님의 생명,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 속에
사는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께로부터 나야 영생입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바리새인이며 유대의 관원이었던 니고데모가 밤에 몰래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몸이 어떻게 다시 난다는 말인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수 있습니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
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니고데모는 육을 생각 하고 있어지만, 예수님께서는 영을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예수믿어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하시고 이어서 요한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참된 영생의 얻음은,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이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시는 주기철 목사님이, 평양감옥에 갇혀 있을 때의 일입니다.
같은 방에 ‘주영하’ 라는 모스크바 대학을 나온 열성 공산주의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같은 ‘주’ 씨라 서로 통성명을 한 후, 주영하라는 사람이 나이가 어려 주기철 목사님을 형님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같은 방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주기철 목사님과 헤어지게 되었을 때 ‘주영하’ 란 공산주의자가 말합니다.
"내가 공산주의자 되기 전에 형님을 만났다면, 내가 골수 예수쟁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형님 한 가지 부러운 것이 있습니다. 나는 평등과 자유와 모두 같이 잘사는 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으면 그만입니다. 거기서 끝입니다.
그런데 예수쟁이들은 이땅에서 삶은 초개와 같이 여기고, 천국에서 영생하는 삶을위해 기꺼이
웃으며 죽는 모습, 한 가지는 정말 부럽습니다." 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영하란 공산주의자도 부러워하는, 이 땅의 삶이 아닌 영생의 생명이 우리 성도들에게
있기에, 또한 세상이 줄수 없는 그 어떤 기쁨과 복을 믿음을 통해 소유할 수 있기에, 우리는 항상
웃으며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지극히 높여야 합니다.
잠언 4장 8-10절에,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였느니라,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그냥 지혜도 되지만,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 십시요. 그러면 위로부터 생명의 성령이 임하십니다. 사도행전 2장 33절에,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하셨습니다. 본래 성령은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으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에배를 통하여 성삼위 하나님을 높이는 우리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한복음6장 47-48절에도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 이로라”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매일 열심히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배와 찬양을 통하여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겸손과 순종을
통하여 먹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물건을 서로 통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으로, 생명의 떡이 서로 부족하지 않게 한
초대교회의 모습과 신앙을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3. 복음에 끝까지 서는 것입니다.
고전15장 1-2절에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복음에 끝까지 서라는 말씀입니다.
사탄이 불어 넣어주는, 악하고 추하고 더러운 죄악된 생각들, 미혹된 생각들, 진리를 떠난 세상적인
생각들 다 몰아내고,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만 바로 서야 합니다.
진리 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나를 봐야 합니다.
끝까지 나는 예수 안에서 의롭고, 예수 안에서 복된 자다. 예수 안에서 영화로운 승리자다. 라고
고백할 때에, 나에게 하나님의 인도와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걸 못 믿고 세상적인 눈으로 현실을 보면 실망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통해서는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고, 구원과 은혜를 바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16절을 통하여 말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했습니다.
4. 주를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예수를 전하던 스데반의 얼굴에 나타난 그 성령과 예수로 충만한 영생이 그 증거인 것입니다.
그 후 많은 순교자들의 얼굴에도 같은 충만한 영생이 보였습니다.
목숨 바쳐 예수를 전해야 하고 또 신앙을 지키며, 목숨 바쳐 사명 감당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누가 9장23절을 보면,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베드로전서 4장14절을 보면 베드로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매일 매일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며, 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믿어 구원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므로
생명으로 풍성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을 높이고 ,복음을 붙들고 의지하며 , 주님위해 희생 할 때에
우리가 얻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바로 그 영생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나와 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음성을 듣고 문을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 주님이 참된 영생을 주시기 위해, 오늘도 문밖에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저 문만 열고, 문밖에 계신 주님을 맞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과 더불어 먹으면서, 주님이 주시는 영생과 복을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과 더불어 먹고있는 모습 한번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멋지고 황홀하고 행복하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아직도 문밖에 서계신 주님을, 그대로 문밖에 세워 두신 분은 없으신지요?
아직도 문을 열어 드리지 못했다면, 이순간에 문을열어 주님을 내안으로 영접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영접함으로 주님과 더불어 영생을 누리는, 하늘의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 생수의 강'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의 사명 (마태 28장 16-20절) (0) | 2024.03.10 |
---|---|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요한계시록 2장 1∼7절) (0) | 2024.03.06 |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태 16장13-20절) (0) | 2024.02.26 |
염려하지 말라(누가 12장 22-26절 ) (0) | 2024.01.30 |
하나님이 칭찬하는 교회 (고전 4장 1-5절) (0) | 2024.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