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무리하는 싯점에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감사한날도 있었고, 기쁨이 충만한
날도 있었으며 곤고하고 힘든날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용히 생각해보면 감사하고 기쁜
날 뿐만아니라, 곤고하고 힘들었던 날도,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서양속담에 “시냇가에 돌들을 치우지말라. 돌들을 치워버리면, 시내는 노래를 잃어버린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말은 돌들때문에 시냇물은 흘러가면서 노래소리를 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받은 고난들도, 이와 같이 시냇가의 돌과 같지 않나 싶습니다.
굴곡이 없는 평온한 삶을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지만 그런삶은 반면에 무의미하고 단조롭고
권태스러운 삶이 되기 쉽상 입니다.
2천년 교회사를 보아도 교회가 핍박 받을때에 오히려 신앙이 견고해지고 부흥 성장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반면에 교회가 국가권력의 보호를 받거나 평안할때에는 '세속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개인의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믿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초대교회
당시의 믿음이, 가장 순수하고 열성적이었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땅에 처음 복음이 전파되었을 당시 예수님을 믿으려면 자신의 삶은 물론 목숨까지도 내려
놓아야 할만큼, 온갖 고난과 박해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배들은
이모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본을 우리들에게 남겼습니다.
반면에 오늘날은 믿을수있는 여건이나 환경이 너무 좋아졌음에도 교회나 신자들이 이사회에
역동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복음'은 항상, 새 포도주와 같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담는 부대인 사람들의 심령은, 항상 새것으로 남아 있지 못하고 낡아져 갑니다.
고린도후서 4장16절 말씀과 같이,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
지도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심령이 날로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고,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시기 위해서
고난으로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고난을 피하지도 말고,
불평도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이러한 고난의 때가 '믿음의 진보'를 이끌어 낼수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고난 당할때 어떠한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이시간 함께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고난을 만났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고난을 이겨내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8절을 보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삶의 의미는 오직 하나 주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의미를 깨닫지 못하거나 엉뚱한데서 찾으려고 몸부림치던 사람
은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받고, 하나님의 사랑을받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삶이 무의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가며 왜 사는지를 알지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안에 머물러 있기때문에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고난의 때에는,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외치라”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는 배에 오르자마자, 맨 밑층으로 내려가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을 거역한, 양심의 가책을, 그런 식으로 피해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요나는 죽을고비를 만나자 비로소 자신의 불순종의 죄를 깨닫고 물고기 뱃속에서 진정한
회개의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요나서 2장 2-9절에 나와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불순종하고, 영적으로 잠든, 요나를 깨우셨습니다.
지금 고난을 만났습니까? 고난의 때를, 우리의 영적상태를 점검하고 인생의 좌표를 바로
잡는 유익한 기회로 선용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셋째로, 고난의 때에, 더 성숙한 '믿음의 진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욥기 1장1절을보면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자였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천사들과 사단이 모인곳에서 사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던 욥이었지만, 그에게 무서운 고난이 다가왔습니다.
하루 아침에, 그의 모든 재산을 잃게되었고, 열 자녀가 한꺼번에 몰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온몸에 악창이나서 재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는 비참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욥의 비참한 모습을 보다못해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조소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뇨”하고 이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욥도, 자기가 무슨 이유로, 고난을 당하는지 알기 위해, 몸부림 쳤습니다.
그러나 욥기 23장 10절을 보면, 그는 믿음의 의인답게 “내가 가는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난당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한가지 그가 확신하는바는 하나님께서 그의 신앙을 순금
같이 만드시 기 위해서, 연단을 허락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욥과 같이 하나님을 잘섬기는 경우도 때론 고난을 만날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기위해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훈련
시키듯이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단련시키십니다. 그런즉 고난이 다가올때 이같은 하나님의 뜻
을 분별하시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들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우리가 주님보다, 세상을 바라보며 의지할 때에, 고난이 옵니다.
성도가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믿음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6장 24절에 말씀 하시기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여기며 저를 경히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 하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면서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고, 무역을 하지
않았으나 한사람도 굶어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세상을 사랑할때, 하나님은 고난을 보내셔서 세상에대한 애착을 끊게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보내셔서 우리가 항상 의지하던 세상적인 배경과 물질을
끊어버리시고 세상을 바라보던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만 의뢰하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혹시, 내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한 적은 없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가 하면, 주님을 위해 사는 데도, 고난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르심을 받은날부터 오직 복음을위해 살았지만 심한고난과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고린도후서
1장8-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자신이 사형선고를 받은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말고 오직 죽은자를 다시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얼마나 고난이 심했으면 사도의 입에서 살소망이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줄 알았다고까지
고백을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어떤 연유로인한 고난이 다가올지라도 낙심하거나 자신을 의지하지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로,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자족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만사형통 할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기쉽습니다. 다 자기가 잘나서 잘되는 줄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고난을만나 인생의 쓴맛을 맛본 사람은 마음이 낮아져서 작은것에도 감사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진수성찬을 놓고도 감사할줄 몰랐는데, 지금은 조촐한 음식 앞에서도 국이 다식도록
감사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죽을병에 걸려본 사람은 자기가 숨을쉬고 푸른 하늘을 볼수있다
는 사실에도 감격해 합니다.
사람들은 돈이많아야 행복한줄 압니다, 그러나 참 행복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지않습니다.
현대인들은 가진 것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빈곤 의식 때문에 불행해 합니다.
이처럼 비교 의식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으면,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13절을 통하여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줄도 알아
모든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줄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내가 능력있고 내가 지혜로워서 할수 있는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것을 아시고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임할때에 사도바울
처럼 자족하는 마음으로 감사할 때에 내앞에 놓여있는 고난을 능히 감당하고 극복하실수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고난의 때에는, 하나님의 '자비와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이기려면, 자비가 한량없으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조국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붙잡혀가는 암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생각하고, 다시금 힘을 얻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 애가 3:20-23절에서 “내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마음에 담아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
이 크시도소이다.” 라고 하나님께 아뢰었던 것입니다.
또한 예레미야 29장 11절에서,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
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로 고난당하게 하시는 그자체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고, 마지막에는 고난에서 구원하셔서 복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만들어 줍니다.
잠언 24장 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 고 하였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극렬한 풀무불 가운데서 건지시고 '다니엘'을 사자의 입에서
보호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들도 현재의 모든 고난과 역경에서 능히 보호하시고 건져주실
것입니다.
올한해동안 나에게 다가왔던 이모양 저모양의 고난으로 믿음이 진보되고 하나님께 더가까이
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음을 감사하며,
시편 119편 71절 말씀과 같이,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함으로 이한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이땅에 드러내는 놀라운 은혜
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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