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 생수의 강

헬라인을 향한, 바울의 전도 (사도행전 17장 1-9절)

Andy1954 2023. 5. 26. 08:04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가르치며, 전도하며 겪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흔히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었다' 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재산은 내게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기 때문에 재산을 잃는 것은 적은 것을 잃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잃으면 '많은것을 잃었다' 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은 한번 흘러가면 다시 돌이키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었다' 라고 말합니다. 건강을잃고 죽으면 끝나기 때문에 전부

다 잃었다고 하는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좀 다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건강보다 더 귀한 것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의 장 이라고 하는데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은 믿음의 선배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목숨보다, 건강보다 더 귀한 것은 믿음이라 할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땅의 그 무엇보다도 믿음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들은 해 아래서의 부와 권력과 명예까지도 배설물과 같이 여기면서, 믿음을 지켜왔던 것입니다.

믿음은 이처럼 값지고, 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전도를 통하여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어떠한 믿음을 갖게 되었으며

어떻게 믿음의 삶을 지킬수 있었는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바울의 강론(설교)을 통하여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을 보면,

'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은 듣는데서 시작이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해서 들은바가 없으면 믿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바울이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하는 강론을 열심히 들었고, 또 믿은 것입니다.

오늘날,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를 통해서 또는 성경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지만,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믿음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는 들음 즉 성경공부에서부터 출발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본문 1절에서 3절을 보면,  바울 사도가 빌립보를 떠나 이리 저리 다녀 데살로니가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는 유대 사람이 절반이요, 헬라인 토박이들 절반이 살고있는 헬라의 큰 도시입니다.

바울이 그 곳에 이르러 안식일에 유대인의 회당을 먼저 찾아 복음을 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본래 바울 사도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보냄을 받은, 이방인의 사도입니다.

그런데도 어느 도시에 가든지 유대인의 회당이 있으면, 그 회당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그 이유는 같은 값이면, 내 동족에게 먼저 전도하여 구원하겠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세 안식일 동안, 바울이 자기의 규례 혹은 습관을 쫓아, 성경을 읽고 쉽게 풀어 가르쳤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 조상적부터 기다리는 메시아가 오셨는데 그분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우리 대신 죽으시고 또 죽은 다음에는 다시 살아나셨는데, 바로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사실을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는 로마서 4장 25절의 말씀을

가지고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하고 기다리는 그리스도는 큰권세를 가지고 로마군병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정치적 으로 해방시키는 그런 메시야 였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성경을 통하여 증거하고있는 오신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리고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그런 그리스도가 아니라, 전 인류의 구속을 담당하실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강론을들은 그곳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바른 진리이고, 여기에 생명이 있다' 라는것을

믿게 되었고, 그래서 바울에게로 돌아온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의 믿음은, 이처럼 성경 공부로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믿음의 출발은 성경을 바르게 배우는 것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배움에 있어서는 즐거움과 재미가 있어야 하고,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성경을 많이 읽는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이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지식이 많아서 입을 열었다하면 성경이 줄줄 나온다해도 말씀대로 행함이 없으면  지적인 믿음이요

이론적인 믿음이요 사색적인 믿음이요 관념적인 믿음일 뿐입니다.

말씀이 믿음으로 승화하지 못하고 지식으로 머물러 있으면 신앙이 자라지 못합니다. 

반드시 그 말씀이 살아있어 생활화 되어질때, 말씀을 통하여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 말씀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면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가 안식일마다 유대인의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에 가서 전도를 했는데, 왜 헬라인의 큰 무리가 예수를 믿습니까?

그리고 왜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예수를 믿겠다고 돌아옵니까?

데살로니가에 유대인들이 모여 살면서 회당을 세웠습니다. 헬라인들이 유대인들의 믿음을보고

그들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신임을 깨닫고 자기 조상적부터 섬겨오던 우상을 버리고

유대교로 개종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가르켜 경건한 헬라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수가 큰 무리라는 것입니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안식일에 유대인의 회당에 참석하게 되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믿어도 예수는 믿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함께 믿는 것입니다.

바울의 전도를 받은 이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이 가르침이 진리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교로 개종했던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이 성경의 가르침대로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즉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헬라의 많은 사람들과 귀부인들의 믿음은 이처럼 행동하고, 실천하는, 즉 살아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8절을 보게되면,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여달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여주겠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해진다고 덧붙였습니다.

행함이 있는믿음이 무엇입니까, 생활 속에 믿음의 뿌리가 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예배드릴 때는 경건한 믿음이 있는것 같은데 밖에서는 전혀 딴 모습이라면 생활과 믿음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믿음은 경건의 모양은 있는것 같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과 생활이 하나되는 살아있는 믿음을 소유하시길 원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믿음은 희생적이고, 순교자적 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안식일에는 반드시 유대인의 회당에 가서 성경을 풀어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는 유대인의 회당이 아니고, '야손'이라하는 사람의 집에서 시작이 된것입니다.

그래서 회당에서 예수를 믿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은, 야손의 집으로 모였습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많은 사람들이 넘어가는데, 유대인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바울 때문에 유대교로 개종했던 사람들이, 기독교로 다시 개종하니까 시기가 가득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붙잡기 위해서 저작에 나가서 괴악한 사람들 즉 깡패를 동원하여 야손의 집으로 달려

갔습니다. 바울을 제거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들이 야손의 집으로 달려갔으나, 바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분노한 그들은 바울대신 야손과 믿음의 형제들을 끌어내었습니다. 군중심리로 소요를 일으킬 때

끌고 가다가 협박하면, '바울을 여기에 숨겨 놓았습니다' 하고 바울을 숨긴 장소를

알려 줄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야손과 그 형제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끝까지 끌려갔습니다.

끌려가다 보니 읍장들 앞에 가게 되었습니다. 읍장들이 냉정하게 살펴보니 아무것도 아닌 문제이기에

보석금 을 받고 놓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세워진 교회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그런 와중에서 믿음이 자라서, 아리스다고와 세군도 같은 귀한 일꾼이 그 교회에서 난 것입니다.

일꾼도 희생적인 믿음을가진 교회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순교적인 믿음을가진 가정에서 귀한일꾼이

나는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적이고, 순교자적인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믿음은 천하가 당하지 못하며 가는 곳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렇게 잘

되고 승리할 수 있었것도 그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희생적이고 순교자적인 믿음을 소유할수 있도록 하여야 겠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믿음은 그 말씀 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믿음이 사색적이고 지식적이고 이론적으로 끝나면 써먹을데가 없습니다. 생활속에 믿음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을때, 그 믿음은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믿음의 역사와 증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때로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수고와 희생도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럴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더 좋은것을 받을수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이땅에

온전함을 이루게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