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27권중 거의 절반을 기록한 바울은, 교회 또는 개인에게 그의 서신을 보낼 때, 인사말이 있는 서론
부분이 끝나고, 본론 부분에 들어갈 때는 언제나 그의 서신을 받는 교회나 개인의 장점을 부각시켜 칭찬하며
감사하는 말로 시작하였습니다.
사실 고린도 교회를 비롯한 몇몇 초대교회들은, 그 당시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경우 그들은 몇개 파로 나뉘어서 분쟁하고 있었으며 성도간에 송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음행문제도 있었으며, 잘못된 신비주의로 인해, 교회의 질서가 흐트러지기도 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 라는 두 여성 지도자들 사이의 골이 매우 깊어서, 교회가 분열될 정도 였습니다.
이런 저런 문제로 사도 바울에게 많은 심려를 끼치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에도, 그들을 몇 가지로 칭찬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갈라디아의 교회들에게 쓰는 편지에서는, 관례를 깨고 감사의 말을 전혀 쓰지 않고 있습니다.
본문 1장6절을 보시면,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감사하는 말대신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라는말로 본론을 시작하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일종의 질책하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간단 합니다.
고린도 교회나 빌립보 교회의 문제는 인간의 바른 삶에 관한 문제들로 인하여 바울에게 심려를 끼쳤습니다,
반면에 갈라디아 교회들의 문제는 교리에 관한 문제, 다시말하면, 복음의 본질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교회의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6절을 보게되면 유대주의자들 또는 율법주의자들이라고 불리는
거짓 교사들은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켜 가르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라 할례와 같은 "율법의 행위"로 부르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갈라디아 교인들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대해, 별로 의심하거나 거부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너무나 쉽게 이단 교리에 물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분하며, 화급한 일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8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반대되는 것을 선포하는 자들, 다시말하면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를 향하여,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의 복음만이 있을 뿐이며 그리스도의 복음과 다른것은 인간이 꾸며낸
것이며, 거짓말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유일하고 절대적이며, 다른 것을
좇는 것은 그 행위가 배교임을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다른 복음’이란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말하는 ‘다른 복음’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참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고 내용이 변질되어 있는, 상이한 복음을 일컬어서 말합니다.
즉 전혀 복음이 아닌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영어로 표현해 보면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A different gospel is not another gospel. there is but one gospel.
그러면, ‘다른 복음(a different gospel)’의 특징이 무엇인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이들도 외형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로 포장하여 가르치곤 합니다.
일부 극단적인 이단을 제외하고는, 처음에는 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말하고, 가르치는 척 합니다.
둘째, 이들의 가르침은 사람들을 혼란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은혜만을 사모하며 우리의 모습 그대로 겸손하게 나오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 나오면서 인간의 열심, 공로, 행위를 가지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며, 꾸미고 나오려 합니다.
셋째, ‘복음’의 근본을 왜곡(歪曲)시켜 버립니다.
대부분의 이단들은 구원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것 만으로는 부족하고, 거기에 더해서 다른
그 무엇을 요구합니다. 그러한 그들의 주장과 요구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good news가 아니라, 결국은
사람을 죽이는 bad news가 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다른 복음(a different gospel)’이란 어떤 것입니까?
첫째,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에다, 다른 것을 보태는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개척한 여러 교회들은, 당시에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이 같이 한 교회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들 중에서 유대인 신자들은 예수 믿는 것 외에 할례를 받아야 하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사도행전 15장 1절에도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1절에서 베드로사도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줄 믿노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보태는 것은, 복음을 변질시키는 무서운 누룩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캐톨릭에서도 교황과 성모 마리아를 섬기는 모습을 볼수 있지 않습니까?
둘째, 예수님의 위치를 바꾸거나, 복음에서 빼어 버립니다.
‘여호와의 증인’을 예로 들면,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감추어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천사의 우두머리로,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인 피조물이라고 펌하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권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로 이땅에 오신것을
부인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지자 중의 한사람이라고 깍아 내립니다.
그러나 디도서 2장 13절을 보게되면, 우리 예수님을 크신 하나님으로, 요한 복음 10장 30절에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빌립보서 2장 6절에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기록되어있음을
보아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복음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인데,
엉뚱하게도 세상에서 예수 믿으면 출세하고 성공하며 잘 살게된다는 것만 강조합니다.
이것은 기복사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좋아하는, 또 하나의 잘못된 ‘변질된 복음’으로(갈1:10)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시하는 것이며, 영생의 복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 가지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보면, 인간의 첫번째 목적이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복 받고, 건강하고,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는 목적이 될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준 성경 말씀만이 ‘참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내는 복음이 ‘참복음’입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4장 12절 말씀과 같이,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죄악에 물든 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썩어져 가는 사회를 갱신하여 줄 뿐 아니라,
이 험악한 세상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고, 하나님 나라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며 지켜줍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복음 (이단이나 세상적 복음)이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성도들의 마음을 미혹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고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날도 그 당시의 윱법주의자들 처럼, 이단 사상으로 우리를 교란케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처럼 복음의 유일성과 절대성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진리 안에 머물며 거짓과 이단사설과 위선에 대하여, 단호히 배격하고,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4-5절 말씀을 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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