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 32절 말씀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오,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오늘 본문은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이렇게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왜, 히브리서 기자가, 이런 표현을 사용했겠습니까?
믿음의 선진들이 믿음으로 이루어 낸 위대한 일들에 대한 사례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통해서 이 사실을 충분하고도 분명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선진들의 믿음에 대한 설명을 마치면서 여섯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기드온, 바락, 삼손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나머지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의 믿음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조셉 하이든'이 작곡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이든은 병이 들어 몹시도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있는 힘을 다해 그 연주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날 공연은 대단히 훌륭했습니다.
연주가 끝났을 때 관객석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일제히 지휘자와 악단을 향해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지휘자는 뒤로 돌아서서 청중들의 박수에 답례를 하다가 문득 그곳에 있는
하이든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휘자는 박수를 중단시켰습니다.
그리고는 하이든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러분, 바로 저분입니다. 저분이 이토록 훌륭한 곡을 만드신, 장본인이십니다."
그 말에 청중들은 하이든을 보면서 또다시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하이든은 황급히 사람들의 박수를 중단시켰습니다.
그러더니 그는 조용히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저분이 하신 것입니다. 제가 얻은 모든 영감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오로지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선진들이 이루어 낸 위대한 일들을 차례대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건너기도 하고, 또 믿음으로 견고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도 했습니다.
믿음으로 적은 수의 인원으로 수많은 적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 나오는 사람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이것은 잘못 된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비록 부족하고 허물이 많아도 믿음이 있으면,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하시고 그 믿음을 통해서 귀한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오직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5장 10절에서 이렇게 말망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렇습니다. 바울이 바울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이 아브라함 되고 노아가 노아 되고 모세가 모세 된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우리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귀한 믿음을 얻게 된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이 자라나서 더욱더 돈독해지기를 바랍니다.
돈독해진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리고 믿음으로 큰 역사를 이루어 냄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 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은 먼저, '입다' 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구약 성경 사사기에는 모두 열 두 사람의 사사가 등장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입다는 여덟 번째 사사에 해당되는 인물입니다.
그에 대한 기록은 사사기 10장 6절∼12장 7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입다'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께 한 서원 곧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의 사랑하는 딸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 사람이었습니다.
입다가 암몬 자손을 치러 갈 때 입다는 하나님께 이러한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께서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 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를 내가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입다는 좀 성급했습니다. 암몬 자손에게서 빼앗은 소나 양을 택해서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입다는 의욕이 앞서서 별 생각도 없이 하나님께 그러한 서원을 해 버린 것입니다.
물론, 입다가 자기의 사랑하는 딸을 염두에 두고서 그러한 서원을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가 서원하면서 했던 말 가운데 "누구든지"와 "그를"이라는 단어가 남성형 대명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입다는 생각이 너무 짧았습니다 경솔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을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던 애굽의
군사들이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보면서 승리의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모세와 아론의 누이 미리암이
맨 먼저 손에 소고를 잡고 춤추면서 노래했으며 그리고 그를 뒤따르는 여인들이었습니다.
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치고 돌아왔을 때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히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이렇게 노래하며 뛰놀던 이들이 누구였습니까? 그 역시, 여인들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입다의 생각이 조금만 더 사려 깊었더라면 그가 승리하고 돌아올 때, 자기의 아내나 딸이,
제일 먼저 자기를 기쁘게 영접해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입다는 별생각 없이 하나님께 성급한 서원을 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입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생각하면서 무엇이 또는 누가 제일 먼저 자기 집에서 나와서
자기를 영접해 줄 것인가를 눈여겨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입니까?
자신의 사랑하는 딸이 손에 소고를 잡고서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딸 앞에서 자기의 옷을 찢으면서 괴로워했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딸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그 딸은 입다의 무남독녀였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의 딸이 번제로 드려지면 자연히 입다의 후손이 끊기고 마는 것입니다.
입다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하나님에게 약속하신 대로 내게 행하소서."
그러면서 자기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드리지 못하고 처녀로 죽게 된 것을 애곡 하기 위해서,
두 달의 기한을 요청했습니다. 딸은 그의 허락을 받고 친구들과 함께 산에 가서 자기가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두 달 동안 애곡 했습니다.
그 뒤에 입다는 자기가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했습니다.
그로부터 이스라엘 여인들은 해마다 입다의 딸을 위해서 나흘씩 애곡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입다는 자신의 성급한 서원으로 인해서 사랑하는 딸이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몹시도 마음이 괴롭고 아팠을 것입니다.
그런데 입다의 성급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입다가 암몬과 싸울 때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다에게
항의를 하며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입다는 또다시 성급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자기가 속해 있는 길르앗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에브라임을 쳤습니다. 에브라임은 길르앗을 이기지 못하고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입다가 이끄는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도망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요단의 나루턱을 지키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강을 건너는 사람마다 "쉽볼렛"이라는 단어를 발음해 보라고 요구했습니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가면 "쌀"을 잘 발음하지 못해서 "살"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에브라임 사람도 "쉽볼렛"을 잘 발음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찾아내서 죽인 에브라임 사람들이 사만 이천 명에 이르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입다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기생의 아들이었습니다. 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 본처의 아들들에게서 쫓겨나서 하류 인생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입다를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고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입다도 마땅히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었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성급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자기 동족 에브라임을 그토록
무자비하게 살육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입다는 허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이 오늘 본문에 당당하게 기록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가지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귀하게 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7장 1절 이하를 읽어보면 사람이 자기의 자녀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했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속전으로 대신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번제로 받으시기를 기뻐하시겠습니까?
따라서, 자기의 딸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행위 자체는 명백하게 잘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행위를 탓하지 아니하시고 동기가 되는 믿음을 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린 서원이기에 자신에게 어떤 아픔과 손해가 있더라도 지켜야 한다는 그 믿음을
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입다는 대가 끊어져 버리는 아픔이 있었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 아픔을
감수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입다의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실하신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지키시고 이루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우리의 믿음에 반드시 상을 주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들에게도 신실한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계시록 21장 27절을 보면 거짓말을 하는 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오지를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의 아비는 사단입니다. 거짓말하는 자는 사단을 닮은 것입니다.
입다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신실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도,
정직하고 신실한 삶을 살아가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다윗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많이도 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다윗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참으로 대단한 찬사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를 이토록 많이 입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의 용모가 뛰어났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서 이새의 집에 찾아갔을 때였습니다.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을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자 함이었습니다.
먼저 사무엘은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을 보았습니다. 용모가 뛰어났습니다.
그는 속으로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그의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실 외모로 따진다면 다윗보다는 그의 형들이 훨씬 더 나았을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총애를 받았던 이유는 그의 용모가 훌륭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까?
그가 흠이 없는 삶 도덕적으로 완벽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그는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간음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우리 아를 최전선에 내보내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살인죄도 범했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는, 죽은 부하에게 온정을 베푸는 척하면서,
다윗은 밧세바를 자기 왕비로 맞아들였습니다. 얼마나 가식적인 사람입니까?
그뿐 아니라 그는 이생의 자랑에도 약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부강하게 되자 그의 마음에 교만한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마치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낸 것처럼 자신의 명성과 능력을,
과시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전역에 인구조사를 실시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무척이나 싫어하셔서 이에 대한 징계로 이스라엘에는 온역이 내렸습니다.
그 결과 칠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와 같이 다윗은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넘어갔던 흠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다윗을 이처럼 사랑하시고 은혜와 복을 베푸셨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순수한 믿음을 보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돈독한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가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넘어뜨렸을 때 다윗은 군인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싸 주신 음식을 형들에게 전해주려고 전쟁터로 온 나이 어린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블레셋의 골리앗 때문에 이스라엘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마음속에서 불타오르는 의분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의 허락을 받고서 골리앗을 향해서 나아가며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을 의지하고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다윗은 하나님이 골리앗을 자기의 손에 붙여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매끄러운 돌 다섯개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을 넘어뜨리는 데는 다섯개의 돌이
다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개로 충분했습니다.
다윗이 물매로 던진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박혔습니다. 그 큰 거인이 그 자리에서 넘어졌습니다.
다윗은 달려가서 골리앗의 칼집에 있는 칼을 빼어 골리앗의 목을 베었습니다.
골리앗은 자신이 그처럼 자랑하며 의지했던 자신의 칼로 자기의 목을 베이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골리앗처럼 세상적인 것을 의지하지 맙시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낭패를 당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힘 있게 믿고 의지할때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주실 것입니다.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자 사울 왕은 다윗을 시기했으며 나중에는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때문에 다윗은 늘 쫓겨다니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힘들 때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모든 환난을 믿음으로 극복했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쫓는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으나 못하게 막았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이었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세우며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사울 왕을 선대 했으며 사울 왕이 죽고 난 후에는 그의 후손들에게도
은총을 베풀었습니다.
사울이 죽고 난 뒤에 다윗이 그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오벳 에돔의 집에 있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오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얼마나 기뻤던지 바지춤이 흘러내리는 것도 개의치 않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만큼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소중히 여기고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정금보다도 더 귀하게 송이꿀보다도 더 달게, 여겼습니다.
이뿐만 아니었습니다. 그는 백향목궁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법궤는 휘장 속에 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늘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성전 짓기를 무척이나 사모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군인으로서 손에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성전 짓는 일을 다윗에게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재료들을 힘써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도록 신신당부 했습니다.
이와 같이 다윗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까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기쁘게 여기셨던 것입니다.
그의 마음 중심에 있는 믿음을, 하나님께서 보셨던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의 일로 범죄 했을 때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책망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헤롯 왕의 잘못을 책망했을 때 헤롯 왕은 어떻게 했습니까?
세례 요한을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나중에는 목을 베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달랐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의 잘못을 책망했을 때, 다윗은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면서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에게도 많은 허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다윗의 허물을 탓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도리어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보면 다윗을 향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라고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부족하고 허물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탓하지 아니하시고 다윗에게 하셨던 말씀을 우리에게도
똑 같이 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와 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셋째로, 사무엘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우리가 흔히 예레미야를 가리켜서 '눈물의 선지자' 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은 무슨 선지자라고 불립니까? 그는 한 마디로 '기도의 선지자' 였습니다.
사실 그가 태어난 것도 그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도 사무엘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셨다"라는 뜻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죽고 난 뒤에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외쳤습니다.
"너희는 다 미스바로 모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로 모였습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며 회개했습니다. 영적 대 각성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것을 알고서 블레셋 사람들이 공격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불어서 칼과 창을 들고서 블레셋과 맞서 싸웠습니까?
아닙니다. 사무엘은 어린양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온전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이스라엘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만을 전적으로 의지했는데 그것이 바로 사무엘의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의 믿음에 응답하셔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갑작스럽게 벼락을 맞은 블레셋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추격해서 전멸하고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에벤에셀(도움의 돌)" 이라는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사무엘은 큰 믿음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좋은 사무엘이었지만 자녀 교육만큼은 실패했습니다.
그가 나이 들어 늙었을 때 사무엘은 자기의 두 아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의 두 아들들은 아버지와 같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서 뇌물을 받고는 판결을 굽게 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급기야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사무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들에게도
왕을 세워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백성들에게 고별 설교를
했습니다. 그 고별 설교 가운데 사무엘하 12장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리라."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것 자체를 죄라고 여길 정도였습니다.
과연 그는 '기도의 선지자'라고 불리기에 합당할 만큼 일평생 기도에 힘썼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해 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믿음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의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이 더욱더 돈독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될 때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요일 5장 4절에서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라고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악한 세상을 우리가 무엇으로 이깁니까? 우리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덧입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날마다 세상을 이기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고 누리실수 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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