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주안에 서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십니다.(사사기 7장15-23절)(God is doing all.)

Andy1954 2023. 7. 13. 14:20

이스라엘 민족이 또 다시 여호와 앞에서 우상 숭배하며 악을 행하였으므로, 이번에는 미디안(Midian) 사람들로

하여금 7년 동안 이스라엘을 지배하며 괴롭게하도록 허락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사사 기드온(Gideon)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해방시키시는 은혜를 베풀고 있는 모습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원래 이 미디안 족속도 창세기 25장 2절을 보면,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Keturah)가 낳은 자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디안 사람들도 사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민수기 31장 8절을 보게되면, 후에 이스라엘 백성의 대적이

되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삶의 주인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나의 삶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냐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우리 삶의 주인이 나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서 인생들이 문제를 만나 힘들어 할때, 우리에게 하시는 놀라운

은혜의 모습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때,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십니다.

7장 12절을 보게되면, 이스라엘이 싸워야 할 미디안과 아멜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메뚜기 떼처럼 많았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대적하기 위하여, 이스라엘도 처음에는 삼만이천명이 모이고, 그 다음에는 일만명이 남았었습니다.

그런데 7장7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삼백명으로 너희를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이처럼 적은 숫자의 백성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하십니까?

그것은 이번 전쟁으로 영광을 받으실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6장 16절에 기드온이 해야할 일이 나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메뚜기 떼처럼 많은 미디안 사람들을 어떻게 한 사람 치듯할 수 있습니까?

마가복음 10장 27절을 보게되면 예수님께서 사람으로는 할수 없으나 하나님은 다 하실수 있다,고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계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며 말씀인 복음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게되면, 우리 주님께서 가나의 혼례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표적)을 나타내시는 목적이 그리스도의 영광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라고 11절에 나와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요한복음 17장 4절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일을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어떠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면 우리 마음을 영적인

가치에 온전히 쏟아야 하는 것이며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지킬때 가능한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 할때,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십니다.

7장 16절을 보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했습니다.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말과 칼, 창, 방패, 화살등 무기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고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모든 일을 하십니다.

시편 119편 81-82절을 보게되면, 하나님 말씀만 바라보는 시편기자를 볼수 있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육신이 피곤할 만큼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피곤함을 넘고, 간절함을 뛰어넘어 아주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31편을 보시면, 다윗이 얼마나 많은 고통중에 있었는지 잘 알수 있습니다. 

9절을 보게되면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다,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14절에 그러한 고통이 있을지라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면서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아오니 하면서 주님만을 의지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럴때 19절을 보게되면, 주님께서 쌓아두신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심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 땅에 살면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시편 기자와 같이 절박한 심정으로 먼저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며 사모해야 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미디안을 멸하기 전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묻는 기드온의 기도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6장 37절이하에서 기드온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끊임없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고 또 순종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끊임없이 기도 해야 합니까? 그것은 계속 기도해야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집중할 때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39-46절을 보게되면, 우리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열정을 가지시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얼마나 열정을 가지시고 기도하셨으면,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같은 위대한 왕도 그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는 평생동안 무슨 일을 하든지 꼭 하나님께 기도로 묻고,

하나님의 응답대로 순종하며 행하며 살았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잘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을 뜨고 있으나, 진작 보아야할 것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육적인 눈은 열려 있으나, 영적인 눈이 멀어져 있는 상태에 있는 경우 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리 기도를 하여도,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으며,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기적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 기도가 자기 중심적이며, 외식적인 기도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치 내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때로는 내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버젓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고 있는건 아닌지, 자신의 신앙을

뒤 돌아 봐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고 말해야 하며, 또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동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가치를 어떤 논리로, 혹은 머리나 지식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복음만이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복음속에 빛과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세상의 가치때문에 주님을 부르는 자는, 결코 주님을 만나거나 주님의 음성을 들을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3장 1절 말씀과 같이 예수님을 생각하고,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대로 예수님을 바라보며,

히브리서 13장 16절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날마다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때, 우리의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가,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인하여, 영안이 밝아져

영적 가치를 보고 느낄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눈이 밝아졌을 때,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모든 일을 선하게 이루어 주시는 것을 맛보며 체험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