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복음은 하나

오용되고 있는 성경속의 복(사도행전 8장 14-24절)(Misconceptions of Blessing in the Bible)

Andy1954 2023. 11. 22. 11:10

추수의 기쁨을 만끽하며 감사하는 결실의 계절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초막절이있어 추수의 기쁨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며, 추수감사절<Thanksgiving> 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수확에 대한 기쁨을 하나님께 감사하기 보다는 차례라는 형식의 제사를 통해 죽은 조상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사는 언뜻 보기에는 조상에 대한 후손들의 효의 모습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죽은 조상을

통해서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는 허황된 모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요즘 같은 21세기 첨단 과학시대에 죽은 조상을 구복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상식이나 논리에도 맞지 않는 일

이지만 안타깝게도 오랜 관습과 전통이라는 명분 아래 오늘에 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모습이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는 교회안에서도 목격 할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실로 충격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보다는 복을 받기 위하여,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는 사실은 이 시대의 슬픈 그리스도인의 한 단면이라 아니 할수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읽고 있는 각종 신문이나 잡지들을 보면 "오늘의 운세" 같은 기사가 큰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는데 이러한 것도 우리 사회에 만연된 요행주의와 한탕주의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는 하나의 잣대가

될것 입니다.

 

더 기막힌 일은 교회내에서도 변질된 신학의 한 부류인 소위 번영의 신학이라는 것이 널리퍼져 성경을 왜곡되게

가르치고 잘못 해석하여, 교회가 마치 축복의 배급소인 양 선전하며 다니는 안타까운 현실을 우리 주변의 많은

교회들을 통하여 보고 들을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도행전 8장에서 볼수 있는것처럼 초대교회에 있어서 사도들이 안수할 때 성령을 받으며 나타

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돈으로 사려했던 시몬이라는 사람의 행태와 유사하다고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제대로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을

우리에게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을 변질시켜 세상 입맛에 맞게 가르치고 설교하는 말씀 가운데 신명기 28장 말씀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데 5-6절 말씀을 보면, "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단순히 물질적인 복에다만 포커스(focus)를 맞추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형통과 부귀는 구속의 언약 관계에서 살펴 보아야 하며, 그런 관점에서 이 말씀을 생각하면,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들이 본문이 언급하고 있는 형통과

부귀를 단순히, 이 시대의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복만을 의미하는것 처럼 잘못 가르치고 전하고 있는것 입니다.

다시말하면 신명기 28장이 말하고 있는 여러 형태의 복은, 개인적인이고 물질적이며 가시적인 복뿐 만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은혜를 나타내는 예표적인 복을 나타내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구약에서 언급한 모든 예언과 복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이미 다 성취되었고 또한 우리가 받았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오용되고 있는 말씀은, 빌립보서 4장13절 말씀 입니다. 

마치 만병 통치약과 같이 사용되고 있는 이 말씀은, 무엇이든지 할수 있다고 믿기만 하면, 다 이룰수 있다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로 포장되어 가르치고 있으나 이 말씀의 참 뜻은 이런 정욕적이고 이기적 동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말씀 입니다. 이 말씀의 바른 뜻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이 이 서신을 쓰고 있는

이 당시의 배경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옥중에서 빌립보 교인들의 선물을 받은 사도 바울이, 그 간의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겪을 때마다,

주님의 도우심과 능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으로 결국은 예수님을 높이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말씀인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내가 전능자가 된다는 말도 아니고, 내가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자기능력을 고백하는 말 또한

아닌것 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바울의 놀라운 인생고백이라,라 할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거나 맡겨 주신 일들이면, 무엇이든지 다 이룰수 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은 자기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 분의 능력에 힘 입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주님은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지혜와 용기와 부요의 원천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잘못된 목회자들이 말씀의 참 뜻을 변질시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거나, 마치 자신만을

통해서 무언가를 이룰수 있다는 허풍과 과장으로 둔갑시켜 오용하고 있는것 입니다.

 

교회가 잘못 인용하고 있는 말씀 중에 요한3서 2절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의 포인트는 먼저 우리의 영적인 번영이 이루어 질때, 육신적, 물질적 부는

덤으로 누릴수 있음을 말한것 입니다. 다시 말하면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 되고",

여기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된 사람은 영혼이 잘되고, 영적 번영을 누릴수 있는데, 바로 영적 번영을

누리고 있는 사람의 영혼이 하고 있는 일들 때문에, 그 사람의 육신적인 일도 형통하며 잘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선 순위에 있어서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있으며, 그럴때 세상적인 일과

육적인 일도 형통해질 수 있고, 우리의 육신도 건강할 수 있다는 말씀 입니다.

그러나 자칭 축복의 사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배금사상에 젖어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세상적인 부의 추구만

을 강조하면서, 복을 나누어 주는체 하고 있는 것은 성경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무시하는 처사임에

틀림없습니다.

 

요즘 열병처럼 번지고 있는  번영신학에는 고난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이들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고 고백해온 하나님의 진리를 버리고, 도리어 고난 없이도 세상의 모든 것이 잘 되어질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없는 복은, 참된 영광에 이를 수 없다,는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를 우리는

깨닫고 알아야 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이 싯점에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욱 믿고, 순종하고, 의지할 뿐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므로

주님이 주시는 영적 번영은 물론 육신적인 복까지 받아 누릴수 있는 축복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