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고난이 유익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고난을 당하지만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오히려 고난으로 인해서 삶이 깨어지고 상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고난을 통해서 유익을 얻을수 있는가? '지킬 것이 있는 인생' 의 경우다.
우리가 아는대로, 이스라엘은 참으로 많은 고난을 당했다.
그런데 고난으로 인해서 70년동안이나 연단받은후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오게 된다.
그들에게는 지킬 말씀이 있었고, 지킬 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편 137편 1-4절을 보면,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분명히 부를 노래와 지킬 노래가 있었기에 그들은 고난으로 인해서 깨지지 않았다.
우리가 인생을 단순히 평탄하다, 험난하다, 라고 정의하는 것은 지나친 단견이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확실히 지킬 것'이 있는가의 여부이다.
사명이나 목숨을 걸만한 그 무엇이 있는 사람은 강하다.
어떤 가정이 명문 가정인가? 좋은 학벌에 많은 재산이 있다고 명문 집안이 아니다.
목숨 걸고 지킬 명예가 있을때에 명문가정이 될수 있다.
불경기라고 말한다. 그런데 단순히 경기만 좋아지면 되는가?
몸이 약하다. 건강해지기만 하면 되는가?
이런 조건을 다 갖추어도 지킬 것이 없으면, 헛됨과 허망함으로 쉽게 무너진다.
고난 당해도 힘들지 않은 이유는 지킬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은 '고된 일'이 아니라 '헛된 일'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제일 힘든가?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열매없는 헛수고와 의미없는 일이라고 느끼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언제 고난을 이기고, 열매를 거둘 수 있는가? 그것은 지킬 것을 만날 때이다.
바울이 많은 고난을 당했으나 쉽게 넘어지지 않는것은 지킬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 예수께 받은 사명"(행 20장 24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난이 문제가 아니라 사명이 문제인 것이다.
상황은 가변적이기 때문에 언제고 바뀔수 있다. 그래서 상황에 의존하면 흔들리기 쉽다.
지금은 상황이 좋아서 안도한다고 말해도 속으로는 불안을 느낀다.
만약 상황이 또 다시 안 좋아지면 어떻게 하나 하면서 걱정하곤 한다.
지킬 것이 없으면, 내가 이 길을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하며 상황을 미리 알아
보려고 한다. 그리고, 고난이 오기도 전에 '미리 알아서 쓰러져 버린다'
결국 고난도 오기 전에 미리 알아서 기는 인생을 산다.
그러나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은 상황에 관계없이 내 길을 간다.
환경 때문에 위축되는 사람이 있다. 싸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마치 궁지에 몰린 타조가 모래밭에 머리를 묻는 것처럼 부끄러운 행동을 한다.
그러나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은 진취적인 기상으로 도전한다.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은 오그라들지 않는다
지킬 것이 없으면 사는 게 아니다. 죽을까봐 걱정하며 연명하는 삶이다.
세상의 최고 권세는 죽일 수 있는 권세이다. 그래서 최고의 형벌이 사형이다.
마귀는 항상 죽인다고 위협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은 죽지 않으려고 위축되어서 산다.
그러나 지킬것이 있는 인생은 죽이고 살리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참새 한마리도 떨어뜨릴 수 없다고 말한다.
'지킬것이 있는 인생'은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껏 꽃피운다. 생명의 참맛을 보여주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