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회복. 호세아

타작마당에서 있은 일 / 호 9:1-17

Andy1954 2022. 7. 28. 04:36

오늘 본문의, 가장 핵심적인 말씀은, 10절 말씀입니다.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하였으며,

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 하였거늘"

 

하나님께서, 거칠고, 메마른 광야에서,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났을 때,

포도가 열려 있는, 한 포도나무를 발견한 것과 같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그곳에서는, 잡초나 가시나무 정도 외에는, 살아있는 나무를 구경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아주 탐스러운, 한 그루의 포도나무를 발견 했는데,

그 나무에, 포도 열매까지 주렁주렁 맺혀 있었습니다.

그런 포도는, 너무 귀해서, 얼른 먹지도 못할 것입니다.

 

이어서, 무화과나무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무화과나무는, 한 번 심으면 5-6년이 지나야, 첫 열매가 맺힙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열매가 맺힌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농부가 나가 보니까, 첫 열매가 열려 있습니다.

이 첫 열매는, 너무 아까워서, 먹지도 못합니다.

그냥, 첫 열매를 먹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발견한 열매가 풍성히 달린

포도 나무같이, 그리고 첫 열매를 맺은 무화과 나무와 같이, 참으로, 귀한 족속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들은, 무엇이 거룩한 것인지 몰랐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자기 욕심대로,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들은, 죄가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사는 삶은,

하나님 자신이 보셔도, 너무나도 대견스럽고, 존귀하게 여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들이, 더 많아지도록, 가나안 땅에 옮겨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가나안 땅에 옮겨 놓으신 것은,

그들이 더 번창하고,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백성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가나안 땅에 옮겨 놓자마자,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열매를 맺지 않을 뿐 아니라, 평범한 잡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깝지만, 다시 파서,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더 이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어느 타작마당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타작마당은, 원래, 좀 시끄럽고, 요란한 법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작마당은, 무언가, 좀 지나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술을 마시고, 뛰놀고, 남녀가 어울려서, 음란한 짓을 하는, 완전히 미친,

광란의 파티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이방인의 풍년제사의 모습과 똑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곳에 옮기신 것은, 이런 꼴을 보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감사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모두, 하나님 앞에 둘러 서서,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 올 해도, 우리들이 살 수 있도록, 이 귀한 양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고 난 후, 정말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님께 영광 돌리는, 감사의 찬송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짓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아주 귀한 '난' 인 줄 알고 심었는데, 나타난 것은, 평범하고, 무가치한, '잡초' 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더 이상, 가나안 땅에 있을 수 없으며,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이방인에게로, 돌아가야 할 것을, 선언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것이, 바로, 이방인들과 같아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부러우면, 그들을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변질된 이스라엘에게, 다시는, 영광이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마치 새장을 떠나 나라간 새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영광도, 한 번 떠나가고 나면, 다시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유는, 그들이 참으로 귀한 것을, 업신여기고,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1. 타작마당의 행실

이스라엘의 변질된 모습을, 단번에 볼 수 있는 것이, 그들의 타작마당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중요한, 세 절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교절과 오순절과 수장절입니다.

이 세 절기는, 모두, 추수와 관계가 있습니다.

무교절은, 처음 보리를 추수하는 때이고, 오순절은, 보리 추수를 마친 때입니다.

수장절은, 가을 추수를 마친 때입니다.

그러나 이 세 절기는,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다.

무교절은, 애굽의 장자를 죽이는 재앙에서, 구원받은 날입니다.

오순절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입니다.

수장절은, 광야 사십년 동안,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으로, 반석을 쳐서 물을 주심으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은, 추수 그 자체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보리를 추수하는 때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은 것을,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보리 추수가, 다 끝났을 때에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것을, 기뻐합니다.

가을 추수가 끝났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광야 사십년 동안, 그들을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말로만 기뻐하는, 구원이 아닙니다..

이 구원에는, 풍성한 추수의 결실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풍성함을, 더 실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구원의 기쁨은 없어지고,

오직,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이교적인 풍년 제사의 모습만 남아 있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작마당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1절 말씀을 통하여, 살펴 볼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추수 자체를 기뻐하고 있습니다. 물론, 추수가 기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 이방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추수때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추수때, 큰 잔치를 행하고, 사람들이, 많은 성행위를 해야,

그 다음 해에도, 많은 추수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나안 족속들의 추수법이요, 바알의 추수법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각 타작 마당'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타작마당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바로, 이런 추수감사의 의식이 문제였습니다.

다른 민족들은, 추수나 수확, 자체를 즐기며,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굶지 않고,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수를 통하여, 신실하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며, 기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면서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오늘날은, 일용할 양식에 대한 기도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끼의 식사는, 단지 한끼의 식사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한끼의 식사를 통하여, 매 순간 매 순간, 세상 마지막 날까지,

우리를 지키시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주셔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식사를 대할 때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며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한 것은, '구원의 선물' 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해서 거두어들인 양식을,

'음행의 값'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음행의 값'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물론, 추수한 것은, 농사해서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을 어떤 자세로, 얻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농사를 지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되고, 아름다운, 은혜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바알에게 잘 보이면, 추수가 잘 된다고 해서, 이방인들이 하는대로,

똑같이 타작마당에서, 섹스 파티를 열어서, 얻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아니고, 음란한 짓을 해서 벌어들인, 음행의 값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은혜입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야 하고, 은혜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장사를 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고, 공부를 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얻은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속이고, 거짓말하고, 뇌물을 쓰고, 술을 사주면서, 돈을 벌면,

그것은, 음행의 값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과 정성을, 받으시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삶과 우리의 예배를, 자꾸 분리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배와 삶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삶이 더러우면, 예배도 더러운 것입니다.

깨끗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 아무리 거창한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그것은 더러운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맛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버리실지,

무려 네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그들은 더 이상, 가나안 땅의 곡식과 포도주를, 먹지 못합니다.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타작마당이나 술틀이, 저희를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선택한, 거룩한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나타난, 이스라엘 족속들의 모습은, 완전히 잡초의 모습입니다.

이런 자를 위해서, 이처럼 비싼 곡식과 포도주를, 먹도록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그들은 다시, 이방에 포로되어 갈 것이라,고 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저희가 여호와의 땅에 거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이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

'여호와의 땅'은 거룩한 백성들이 사는 곳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족속들은, 거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다시, 포로상태로 되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앗수르로 포로되어 갑니다.

그리고, 앗수르에서, 율법으로 금하고 있는, 더러운 음식을 먹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이런 추악한 짓을 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지 못해서, 안달이 난,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왔는지요?

우리 역시,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 때가 많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는, 죄악된 모습으로 살아 왔습니다.

이런 우리 자신에 대하여, 돌이키고, 회개해야, 할줄 믿습니다.


세번째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드리는 제사를, 막겠다고 말씀하십니다.

4-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 포도주를 부어 드리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바도 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의 제물은, 애곡하는 자의 떡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나니

그들의 떡은, 자기의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라.

여호와의 집에 드릴 것이, 아님이니라. 

너희는 명절 날과 여호와의 절기의 날에, 무엇을 하겠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전제는, 이미 우상에게 드리고 난,

찌꺼기를 드리는 제사입니다.

어떻게 이 포도주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겠습니까?

이것은 마치, 상을 당한 자들의 식물과 같아서,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고서,

'초상집의 음식은 부정하구나, 먹어서는 안되겠구나, 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구약의 율법에서, 상(喪)을 당한 자의 식물이, 부정하다는 것은,

거룩의 개념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정하신 것입니다.

이 당시에는, 세균이나 박테리아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왜, 죽은 짐승의 고기를, 먹어서는 안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죽은 짐승이나 죽은 자의 집에 대한, 특별한 격리를 통하여,

거룩의 개념을,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에게 바친 후에, 다시 하나님께 바치는,

이 더러운 포도주의 제사는, 하나님께 정말 역겨운 것이며, 분노케 하는, 제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멀리 이방 나라로, 쫓아버리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번째로, 그들이 재앙을 피하여, 도망친다고 해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보라, 저희가 멸망을 피하여 갈지라도, 애굽은, 저희를 모으고, 놉은, 저희를 장사하리니,

저희의 은 보물은, 찔레가 덮을 것이요, 저희의 장막 안에는, 가시덩굴이 퍼지리라."

그들이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애굽 입니다.

애굽은, 그들이 늘, 마지막 보루로, 의지하던 곳입니다.

그러나, 애굽이, 그들의 피난처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놉' 은, 북(北)애굽의, 옛 이름입니다.

결국 그들은, 북쪽 애굽까지 도망을 쳐도, 배반을 당해서, 몽땅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 모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고 있는, 귀한 맛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귀한 맛은,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구원을 더 기뻐하는 것입니다.

2. 선지자의 거짓 증거

호세아 선지자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상태에 있다고 선언합니까?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임한 것을, 이스라엘이 알지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

이미,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임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 사실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지자들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여기서 말하는 선지자가, 참 선지자냐, 아니면 거짓 선지지냐

하는 것을 두고, 서로 다른, 두 견해가 있습니다.

'참 선지자'라고 해석하는 견해는, 참 선지자가 이긴 하지만,

워낙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들의 말을, 무시하고, 거부하기 때문에,

이들이, 바보나 미친 사람인양, 취급당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을 하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미칠 수도 없고, 어리석지도 않습니다.

 

다른 견해는, 여기서 말하는 선지자는, 다 거짓 선지자들이라는 견해입니다.

여기서 선지자가 '어리석다' 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도덕적인 교훈을 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바보고, 미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어떤 사람들 입니까?

선지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백성들에게 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있었습니다.

죄인들에게, 듣기 좋은 소리나 해서, 돌려보낸다면, 그것은, 미친 선지자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선포되는, 설교도 마찬 가지입니다,

한 시간 내내, 설교를 듣긴 들어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로만 일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설교는, 하나님의 영적 감동으로 전하는, 말씀이라고 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7절 말씀, 끝부분에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

그들의 죄악이 많고, 원한이 크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죄악이 많고, 원한이 크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들이 너무 많은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에, 회개시키지 않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멸망할 때까지, 바른 말씀을 들을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에,

자기가 옳은 길을 가는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에브라임은, 나의 하나님과 함께 한, 파수꾼이며,

선지자는 모든 길에 친, 새 잡는 자의 그물과 같고, 그의 하나님의 전에는, 원한이 있도다."
첫 부분에는, 선지자라는, 주어가 생략되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지자는, 에브라임의 하나님의 파수꾼이라, 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의미가 잘 통하고, 이해가 쉽게 됩니다.

선지자는, 파수꾼입니다. 이스라엘의 도덕적 타락을, 경고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타락을 경고하기는 커녕, 이스라엘 족속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바른 길로 돌이키지 못하도록, 막는 올무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족속들은, 선지자들이 괜찮다고 하기 때문에,

타락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거기 머물러 있다가, 결국은 망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부패상이, 기브아 시대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기브아 시대는, 이스라엘이 가장 무섭게 타락해 있었을 때입니다.

기브아시대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어떤 레위인이, 베냐민 족속이 있는, 기브아에 첩을 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첩이 있는, 기브아에 갔습니다,

그 때에, 그곳에 사는 불량배들이 몰려 와서, 그 레위인을 강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레위인은, 자신의 첩을, 그들에게 내어 주고, 위기를 모면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네 불량배들은, 밤새도록, 레위인의 첩을 강간하며 괴롭혔습니다.

결국, 새벽녁에, 레위인의 첩은,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브아의 날, 사건입니다.

이러럼 추악한 죄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벤냐민 지파 사람들은, 이들을 쫒아내지 않고, 도리어, 자기 족속이라고 두둔하였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서는, 빨리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그곳의 베냐민 족속들은, 거의 다 죽고, 육백명만, 겨우 살아서 도망을 쳤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두둔하며, 함께 있다가,

모두가 망하고 만 것입니다.

3. 사라지는 에브라임의 영광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사라지는 영광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1절 말씀입니다.

"에브라임의 영광이, 새같이 날아가리니, 해산함이나, 아이 뱀이나, 잉태함이 없으리라."
새가 있다가, 푸드덕 날아가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 새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영광은, 다시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족속들이, 귀한 맛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베냐민 지파를 보십시오. 거의 다 죽고, 겨우, 육백명만 남았습니다.

이스라엘 족속들은, 한 지파가 사라져, 다시는 소생되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이같은 위기를 겪으면서도, 다시 소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벤냐민 지파인 사울을 세워 주셨습니다.

 

13-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보건대,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으나

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내리로다.

여호와여, 저희에게 주소서.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청컨대, 배지 못하는 태와, 젖없는 유방을 주시옵소서”

16절 말씀입니다.

"에브라임이 침을 입고, 그 뿌리가 말라, 과실을 맺지 못하나니,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국 교회에, 이미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 가운데, 참 신앙을 가진 아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숫자가 줄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영성도 메말라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모들이나 가르치는 선생들이, 이들의 신앙이 자라나도록 하기 위하여,

얼마나 헌신적인 노력을 하였는지, 묻지 않을수 없습니다.

말씀으로, 잘 양육하여야, 건강한 신앙인을 만들수 있는데,

시늉만 하지, 신실함이 부족하기 때문에, 점차 메말라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고, 가나안 땅으로 옮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말씀이 있었고, 구원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귀한 신앙이, 더욱 더 확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가나안 땅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도 빨리,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족속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자 마자, 바알브올에게 달려가서,

자기들의 몸을 바침으로, 그 우상만큼이나 가증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10절 하반부 말씀입니다,

"저희가 바알브올에게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의 사랑하는 우상같이, 가증하여졌도다"

하나님께서 분노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변질시키기 위하여, 오랫동안 유혹을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상의 제단을 벌여 놓고, 여자들이 그들을 불렀을 뿐인데

그들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떠나, 우상과 합하여, 더러운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이, 얼마나 뿌리 깊으며,

우리의 부패가, 얼마나 빨리, 한 순간에 물드는 가를 보여 줍니다.

아무리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한 순간에 부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방심하는 순간, 그 틈바구니 속으로, 발람의 타락이 들어오고, 이세벨의 죄악이 들어옵니다.

아무리 오래되고, 크고, 좋은 교회라 할찌라도, 타락하는데,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습니다.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우리 자신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주님은, 마치 광야에서 만난 포도처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물론, 우리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우리를,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은혜를 모르고, 세상 사람들이 성공하고, 잘사는 것만을 보고,

그들을 따라간다면, 주님이 주신 모든 존귀함을, 일 순간에 다 잃고,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