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회복. 호세아

사마리아의 송아지 신앙(호 8장1-14절)

Andy1954 2022. 7. 18. 06:50

사마리아의 송아지 / 호 8:1-14

우리는 이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관계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자연발생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자연발생적인 관계는, 출생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어떤 관계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무슨 계약서를 쓰거나, 도장을 찍지 않아도, 태어나기만 하면,

관계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자연발생적인 관계의 특징은, 자기중심적인 관계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어느 정도 성장하기 까지, 온갖 부족한 것을, 다 돌봐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식이 어리고, 아무 것도 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언약의 관계가 있습니다.

이 언약의 관계는, 서로의 헌신에 의하여, 유지되고, 지탱됩니다.

부부 사이의 관계는, 언약의 관계라고 할수 있습니다.

물론, 서로 사랑하고, 약한 부분을 돌보아 주지만, 서로 헌신적이지 않으면,

그 관계는 깨어지게 되며, 그리고, 대단히 불행한 결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이라는 것, 또한, 자연발생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신앙은, 출생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하나님과 맺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헌신의 관계에 들어가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어나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헌신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행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오해한 데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잘했거나, 못했거나에 관계없이,  무조건 편들어 주시는 부모님처럼,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만들어 낸 신앙이, 바로, 사마리아의 송아지 신앙입니다.

이것은 마치, 송아지가 그들을 위하여, 끝까지 희생되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조건, 잘되도록 해주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신앙의 특징은, 송아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두 돌비의 신앙입니다.두 돌비 신앙의 특징은,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신앙을, 눈먼 송아지의 번영신앙으로 바꾸었습니다.

자신들은, 온갖 못된 짓을 다하면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셔야 하고, 그들에게 복을 주셔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참된 헌신이 없는, 번영신앙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1. 여호와의 집의 심판

먼저, 1절 말씀입니다,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 원수가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그들이,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빨리 전쟁을 알리는, 나팔을 입에 대고, 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집에, 대적이 덮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번역은, 약간 의역된 번역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대로 직역하면 '나팔을 네 입에 대어라.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 위에 있다.'가 됩니다.

그런데 무엇이 독수리처럼, 그 위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을 덮친다.'라고 의역하고 있습니다.

독수리가 위에 떠 있으면, 당연히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 순간에, 독수리가 내리 꽂히듯이, 덮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집을 덮친다'는 말 속에는, 상당한 아이러니(irony)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

‘어떻게 감히 원수들이, 여호와의 집을, 덮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가 스스로를, 여호와의 집이다. 여호와의 집이다' 라고 하면서,

신앙이 대단히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

너희가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식으로,

비꼬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을 벌리기만 하면,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은 '여호와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입만 벌리면 ‘여호와'고, 만나서 이야기만 하면, '하나님' 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처럼, 신앙 좋은 사람들이 모인, 여호와의 집이

감히, 원수들에 의하여, 망한다고 하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여호와의 집'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한 번 좀 보라고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 나라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이렇게 많고, 수많은 신자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멸망시키시 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생각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히 여호와의 집을, 멸망시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여호와의 집에, 독수리가 덮치듯이,

대적이 덮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하나님께 헌신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은 살아 남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그들 스스로가, 아무리 자신들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생각해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원수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어떤 경우에도, 다른 신, 즉 우상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요즘, 직장이나 사회 생활, 심지어 대학 생활에서도,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무슨 대단한 자랑인양, 여겨질 때가 있다고 합니다.

남녀 구별없이, 서로간에 술을 마시게 하는 것이, 관행처럼 퍼져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하는 소리를,

차마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것을, 나타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합니다.

남의 것을 탐내거나,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취득 하기위해, 거짓증거를 하면 안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만족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은 지켜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말로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 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원수들로 하여금,

무너지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2절 말씀을 보면,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소리가 나옵니다.

"그들이 장차,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

이 말은, 그들이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으로 늘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계속해서, 3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버렸으니, 원수가 그를 따를 것이라."

그들은 이미, 선을 버렸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생활을 원치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원하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맞는 생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구원하셨으니까, 더 복주시고, 더 잘되게,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제는 제발, 욕심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선을 이루며, 살라는 것입니다.

선을 이룬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해주든, 말든,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만을 위하여 살면,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막혀버리기 때문입니다.


2. 사마리아 송아지 종교의 특징

사마리아 신앙의 특징은, 그들이 만든, 송아지에 있었습니다.

이어서, 5절 말씀입니다,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려졌느니라.

내 진노가, 무리를 향하여 타오르나니, 그들이 어느 때에야 무죄하겠느냐"

사람들이, 송아지를 좋아하는 이유가 뭡니까?

송아지는 순해서, 인간의 말을, 잘 듣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만 잘 주면, 절대로 사람들을 해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저, 예배만 드리면, 자기들의 요구를, 잘 들어주시며, 복을 주시는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이, 송아지 형상으로 표현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기들 멋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상' 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상은, 사람 안에 있는, 욕망이 표현된 것입니다.

권력을 욕망하는 사람은, 권력의 신을 만들어냅니다.

바벨론의 금 신상 같은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섹스를 욕망하는 사람들은, 섹스의 신을 만들어냅니다.

아세라신이나 바알신,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신을 만들어냅니다.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일종의 돈의 신이고, 번영의 신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생겨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예루살렘을 거부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고,

다윗의 집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겠다고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권을 안정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북쪽에 있는 열 지파는,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다윗의 집을 거부했습니다.

‘우리는 다윗 같은 목자가 없어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나라를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나누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금송아지 신앙을, 갖게 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순한 송아지로 만들어서,

그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눈만 껌뻑거리고, 내버려두는 신으로, 전락을 시킨 것입니다.

 

오늘날, 교인들이 좋아하는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바로 이와같은, 송아지 신앙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아무 간섭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자기 사생활이, 침해당하는 것을, 싫어하며,

듣기 좋은 격려나 해주고, 자신들의 삶은,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꾸 나의 생활에 파고 들어서, 나의 계획을 흔들고,

내 생각을 무너뜨리는 것인데, 이러한 참 신앙의 모습을, 외면하고 싶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목자가 있어서, 늘 바른 길로, 인도해 주셔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교회도 필요합니다.

교회에 모여, 함께 말씀을 들으며, 기도하지 않으면,

세상의 정욕과 안목에 빠져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다 잃어버리고 말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욕심을 따라 행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자신을, 말씀 아래 두어서, 복종하며, 순종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받아 누리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4절말씀입니다,

"그들이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를 세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 그들이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결국은 파괴되고 말리라."

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이 세워진 사람들입니다.

그곳의 지도자들 또한, 하나님이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은, 참된 신앙의 목자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왕이 된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지도자가 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지도자들은, 위기를 맞이한, 사람들을 잘 인도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나아가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굴곡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앉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때에, 영적 지도자들이, 성숙한 신앙의 자리로, 이끌어 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지도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어려울 때 일수록, 더욱 더, 인간적인 생각에 빠지게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위기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절망적이어도,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이 가로막고 서서, 믿음으로 극복해볼수 있는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게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를 세울 때에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없는 것 보다, 훨씬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6절 말씀에, 사마리아의 우상의 정체가 나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장인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산산 조각이 나리라."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참 신이 아닙니다. 사람이 머리에서 나온 것이며, 기술자의 작품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만든 기술자에게, 왜, 이런 것을 만들었느냐고, 한번 물어 보십시오.

위에서 시키는대로, 만들었을 뿐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어서, 헛된 것을 믿은 결과가 , 7절 말씀에 나옵니다.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요

혹시 맺을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바람을 심었는데, 거두는 것은 광풍입니다.

시작할 때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순조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점점 바람이 세게 불더니,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헛된 것을 의지하면, 그 결과가 광풍입니다. 모든 것을, 다 날려 버립니다.

이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하면, 결국, 철저하게 파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하는데,

죄를 지적당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책망하지 않고, 언제나 복을 주시는, 마음씨 좋은 하나님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그런 설교를 듣기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두는 것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자기 중심의 신앙의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기 중심적 신앙의 모습을, 두 가지로 살펴볼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외교적인 관계로, 나라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이 없는, 종교 의식에,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계속해서, 8-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삼키웠은즉,

이제 열국 가운데 있는 것이, 기뻐하지 아니하는 그릇같도다.

저희가 홀로 처한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에브라임이 값주고, 연애하는 자들을 얻었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두 가지 비유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기뻐하지 아니하는 그릇의 비유이고, 다른 하나는, 홀로 처한 들나귀입니다.

이 두 가지는, 다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아무 사용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깨어진 질그릇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리고 혼자 미쳐날뛰는 들나귀를, 누가 데려다가 키우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이처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은, 아무 말도 듣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일이라도, 제대로 알아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매력도 찾을 수 없고,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정말 못난 크리스챤이 되는 것이며, 어글리 크리스챤인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습니까?

멋있고, 신사적이고, 매력적이고, 상식이 통하는, 사람들 입니다.

 

이번에는, 홀로 처한 들나귀의 모습 입니다. 그는 친구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보다 더 잘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혼자서 돌아다니고 ,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다 시시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어디서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특히, 은혜를 받으려면, 공동체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합니다.

정욕이 발동하면, 또 어디론가 뛰쳐나갑니다.

결국엔, 하나님의 복을, 하나도 받지 못하고 맙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아서,

못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시시하다고 여기면서, 자기 스스로, 복을 차 버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값주고 연애하는 자들을 얻었다' 라는 말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원문은, 연애하는 자를 '고용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늘 앗수르를 사모하고, 좋아하더니,

자기들이 어려울 때, 구해달라고, 앗수르에게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고용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여러 나라에게, 값을 주었을지라도, 이제 내가 그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지도자의 임금이 지워 준 짐으로 말미암아, 쇠하기 시작하리라."

하나님께서, 고용된 자들을 다시 모으시기 때문에,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으신다는 것은, 더 급하고, 바쁜 일을 터뜨려서,

앗스르나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돕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돈은 돈대로 썻지만, 도움은 얻지 못한 것입니다.

14절 말씀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은 이를 잊어버리고, 왕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성읍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여기서 '불'은 분명히 앗수르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을 쌓고, 방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기를 지은 이가, 누구냐' 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지은 이는, 하나님 이십니다.

성을 쌓기 전에, 누가 자기들을 지었으며, 자기들이 무엇때문에, 존재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가장 안전한 성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가장 안전한 성을 쌓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거룩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만일, 교회가 사랑과 거룩을 잃어버린다면, 교회는 아무 쓸모가 없게 될 것입니다.


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범죄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여기서 '죄를 위하여'라는 것은, 진정으로, 죄를 회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속죄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만든 제단이라는 뜻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속죄제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감사의 제사요, 서원의 제사들입니다.

에브라임이 만든, 제사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자기 중심의 제사였다는 사실입니다.

유다에서도, 산당은, 신앙의 고질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열왕기를 보면,

어느 왕이 '산당을 없애지 않았으므로' 라는 지적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산당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산당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산당의 제사는, 속죄제사가 아닙니다. '죄를 위하여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복을 빌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풍요를 기원하는, 희생이었습니다.

이 제단들은, 이방 종교로 오염되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을, 범죄하게 만드는, 제단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점점 산당처럼 되어 간다면,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는, 모습일 것입니다.

산당의 신앙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가난한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병들어 있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병이 나아야 하며, 또 성공할 수 있습니다.' 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잘되기를 원하시며, 우리가 건강하기를 원하시지요.

그러나, 우리가 바른 신앙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고난도 주시며, 병을 통하여, 하니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자기 중심에 빠져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더 가로 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기만 하면, 누리지 못할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 신앙이, 얼마나 하나님없이, 자기 중심으로 달려 가고 있는지,

계속해서, 12절 말씀을 통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율법을, 만가지로'라는 말씀은, ‘율법을, 아주 많이 기록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신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키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많은 율법이,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믿는다고 하는 자들조차도,

성경 말씀을,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거나, 배우려고 하지 않고, 그저, 제멋대로, 쓸데없는 일에, 열심입니다.

그래서 13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들이 내게 고기를 제물로 드리고, 먹을지라도,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그들은 애굽으로 다시 가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다시 포로되어, 다른 나라로 갈 수밖에 없음을 말씀합니다.

말씀이 없는 종교는, 다시 영적인 어두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마다, 다 어두운 방황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없으면, 그전처럼 다시, 어두운 암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누릴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