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 24∼26절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미국 텍사스주의 휴스턴 경찰이, 여러 해 전에 "못된 자녀 만들기, 10가지 방법"이라는
아주 특이한 글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자녀를 못된 사람으로 만들려면, 이런 방법을 쓰면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1.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사 주라. 아주 이기적인 아이로 자랄 것이다.
2. 아이가 나쁜 말을 할 때, 웃어넘기라. 점점 더 좋지 않은 말과, 생각으로, 깊어질 것이다.
3. 영적인 훈련과, 교육도 하지 마라. 힘들고 어려울때, 쉽게 포기하고 좌절할 것이다.
4. 못된 행동을 책망하지 말라. 언젠가 못된 일을 저질러 사회로부터 책망을 받게 되리라.
5. 정돈하지 않은 이불, 옷가지, 신발 등을 정리해 주라. 그러면 무책임한 사람이 될 것이다.
6. T.V 나 책 그림 등을 마음대로 보도록 내버려 두라. 그 마음은 쓰레기통이 될 것이다.
7. 부부나 가족끼리 자주 싸워라. 훗날 자신의 가정이 깨어져도 꼼짝하지 않을 것이다.
8. 달라고 하는 대로, 용돈을 얼마든지 주라. 돈의 소중함과 가치를, 모르며 살게 될 것이다.
9. 먹고 싶고 마시고 싶은 것은, 거절하지 마라. 누군가 한 번만 거절해도 실의에 빠질 것이다.
10. 친구들과 대립할 땐 아이의 편이 되어 주라. 건전한 사회가 그 아이의 적이 될 것이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의 자녀가 바르게 자랐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릇되게 자랐는가는,
전적으로 부모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견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죽고 사는 것은 부모인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다. 만일, 모세의 부모에게 믿음이 없었더라면, 모세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길로 나일강에 던져져서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에게 믿음이 있었기에, 모세는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에게 믿음이 있어야 자녀에게 사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모세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물에서 건져내었다"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이 악하고 음란하고 패역한 세대에서 어떻게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녀들을 유혹하는 마귀의 손길에서, 어떻게 건져낼 수가 있겠습니까?
길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믿음뿐입니다.
부모인 우리들이 믿음으로 살고,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우는 길뿐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잘 자라서, 모세처럼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이 시대의 모세가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귀하게 쓰임 받는,
위대한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모세의 삶은 40년씩 3기로 나누어 120세를 살았습니다.
애굽에서 살았던 40년, 광야에서 보낸 40년 그리고 출애굽의 지도자로서의 40년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먼저 모세를 애굽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를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자아가 완전히 깨어지게 하는데 40년을 쓰셨습니다.
그런후에, 하나님은 모세를 40년 동안 출애굽의 영웅으로 삶을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본문 히브리서 11장 24∼26절은, 모세가 장성하여 그의 나이가 40세가 되었을 때입니다.
말하자면, 제 1기의 삶을 끝내고 제2기의 삶으로 넘어가는 전환기 때 된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뒤에 있는 27절은, 모세가 광야에서 보낸 40년 때의 일입니다.
그리고 28∼29절은 생애 마지막 3기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쓰임 받을 때의 일입니다.
오늘 말씀가운데, 모세의 믿음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매 절마다 모세의 믿음을 잘 묘사해 주는 동사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24절은 "거절하고"입니다. 모세는 믿음에 어긋나는 것은 거절했습니다.
둘째, 25절은 "더 좋아하고"입니다. 모세는 믿음에 부합된 것을 선택 했습니다.
셋째, 26절은 "바라봄이라"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도, 모세처럼 거절할 것은 거절하고, 메사에 올바르게 선택하며,
이 세상의 부귀 영화보다도, 언제나 하나님이 주실 상을 소망 가운데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모세가 거절한 것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24절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모세가 장성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 23절에 보면, 그때 모세의 나이가 사십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성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함은 곧 애굽의 왕자입니다.
그는 한 몸에 세상의 부귀, 영화, 권세를 다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함으로써,
세상적인 부귀, 영화, 권세를 다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4절 첫 단어는 "믿음으로" 입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역사에 의하면 그때 바로의 공주는 무남독녀였으며 거기다 그에게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의 공주는 시녀들을 데리고서 나일강으로 목욕을 하러 갔습니다.
그 당시 애굽 사람들은 나일강을 '생산의 신' 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없는 사람은 나일강에 가서 목욕을 하면 아이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때 바로의 공주는 갈대 상자에 들어 있는 모세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니 바로의 공주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 아이야말로, 하늘이 내게 내려 준 아이로구나. 내가 이 아이를 내 아들로 삼아서,
훌륭한 인물로 키워야지.` 그래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입적이 되었습니다.
뒤에 모세는 애굽의 궁으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애굽 왕자로서의 교육도 받았습니다.
모세는 모든 면에 있어서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7장 22절을 보면,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는 기록이 있습니다. 모세가 그때 받은 교육은 나중에 그가 모세오경,
곧 다섯 권의 성경을 기록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역사적인 기록에 의하면 애굽과 에티오피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모세는 애굽의 왕
바로를 대신해서 전쟁에 나아가 큰 승리를 거두고,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그때 익혔던 통솔력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부귀와 영화와 권세를 다 누리며 어쩌면 바로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함"으로 일순간에 그 모든 부귀,
영화, 권세를 다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모세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모세의 믿음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그의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입니다. 모세는 어린 시절을 부모의 품에서 자랐습니다. ,
바로의 공주가 나일강에서 모세를 발견할 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바로의 공주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 요게벳을 모세를 위한 유모로 소개했습니다.
그 결과 모세는 어려서부터 그의 부모님 품에서 신앙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부모 아므람과 요게벳은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지런히 어린 모세에게 힘써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심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허락하셨던 약속들을 어린 모세의 마음속에,
깊이 심어 주었습니다. 모세는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그의 부모에게 받았던 신앙적인 교육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마음속 깊숙이 뿌리내리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는 어릴 때 부모를 통해서 신앙에 대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뒤에 애굽의 궁에서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은 애굽의 궁에서 받았던 세상적인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았던 신앙적인 교육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일학교에서의 신앙적인 교육을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어린 아이들의 일평생의 삶을 주관하기 때문입니다.
구세군 창설자인 윌리암 부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마귀가 손을 쓰기 전에 자녀들에게 먼저 하나님을 가르쳐야 한다.
마귀가 우리 자녀들에게 죄악을 심어 주지 못하도록 우리가 먼저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심을 심어 주어야 한다."
어린 시절의 신앙 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
먼저 하나님을 심어 주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심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자녀들은 믿음으로 자라서 모세와 같이 이 시대에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로, 모세가 더 좋아했던 것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25절 말씀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 과 다른 한 가지는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전자는 고난의 길이지만 후자는 낙을 누리는 길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길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를 향해서 나아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낙을 누리는 길은 잠시 누리는 죄악의 낙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길의 종말은 멸망입니다. 죄악 안에는 쾌락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의 낙이라는 말 앞에는 언제나 "잠시"라는 말이 단서로 붙습니다.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린 후에는, 영원한 고통이 따라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부귀와 영화와 권세는 일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메아리와 아지랑이" 같이,
참으로 허망한 것입니다. 잠시 누리는 죄악의 낙에 불과합니다.
만일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으면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그는 잠시 잠깐 부귀와 영화와 권세는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애굽의 왕 바로가 되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애굽 사람들로부터
신으로 숭배를 받았을 것입니다. 죽고 난 후에는 피라미드에 묻혔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의 육신은 미라가 되어서 애굽의 박물관에 보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속에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택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야, 네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성공할 수 있단다."
물론 이러한 가르침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더 확실한 가르침은 무엇이겠습니까?
"너희들이 살아가다 보면 이런 저런 선택을 해야 될 때가 있을 것이다.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바른 선택을 하도록 하여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도, 언제나 의로운 고난의 길을,
택하도록 하여라. 그것이 영원히 사는 길이란다." 이렇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던"
모세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우리 자녀들에게도 함께 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셋째로, 모세가 바라보았던 것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26절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몹시도 핍박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대제사장의 공문을 손에 받아 쥐고서 다멕섹에 있는 성도들을 붙들어,
예루살렘으로 잡아오기 위해서 그곳으로 갔습니다. 다멕섹에 거의 이르렀을 때입니다.
홀연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예수님은
바울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라 할수 있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애굽의 박물관에 가면 피라미드 속에서 발굴된 보화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피라미드 하나에 들어 있는 금은 어마 어마한 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도 훨씬 더 크고,
값진 재물로 여겼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실 상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반드시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보상을 해 주십니다.
경우에 따라서 우리가 받을 상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 받기까지의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유리할 것입니다.
결제되지 않은 대금은 언제나 이자라는 동료를 데리고 오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거절해야 할 것을 거절했으며 더 좋아해야 할 것을 올바르게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모세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민족은 자기의 자손들에게 두 가지의 유산을 물려준다고 합니다.
한 권의 책과 한 채의 집입니다. 한 권의 책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한 채의 집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 두 가지, 곧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만큼은
꼭 믿음의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자녀들도 믿음으로 잘 자라서
모세와 같이 이 시대에 귀하게 쓰임 받는 훌륭한 믿음의 인물들이 될 것입니다.
이같은 은혜와 복이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항상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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