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 5장 27∼3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 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하루는 영국의 유명한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기자 회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기자가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일 수상께서 다시 태어나신다면 그때는 어떠한
일을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그 질문은 "만일 수상께서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골치 아픈 정치인
으로서의 삶을 또 사시겠습니까?" 이러한 뜻으로 질문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처칠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일 내가 다시 태어난다고 할지라도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또다시 나는 내 아내의 남편이 될것입니다." 동문서답 같지만 옆에서 그말을 듣고 있던 그의
아내는 참으로 행복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나의 아내 나의 남편을 사랑하고 또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하는 것을 보시고 좋지 않게 여기
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위해서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두 사람을 짝지어서 부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두남자를 만드신 것도 아니고 두여자를 만드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남자에 한여자만을 만드시고 두사람을 짝지어서 부부가 되게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남자는 자기의 아내만을 사랑하고, 여자는 자기의 남편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부의 행복을 위하는 길이요 가정의 천국을 이루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을 주신 것도 다른 사람에게 눈 돌리지 말고 남자는 자기의
아내만을 아내는 자기의 남편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우리의 아내 우리의 남편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들이 얼마나 행복한 부부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27절에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간음하지 말라"는 제 7계명을 잘못 해석하고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둘째로, 28절에서는 예수님은 제7계명의 참뜻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셋째로, 29∼30절에서는 부부로서 아내를 그리고 남편을 어느 정도로 사랑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해석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27절 말씀에,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끝 부분에 "너희가 들었으나"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말씀은 긍정적인 차원이라기 보다는 부정적인 차원에서 말씀하신 것이
라고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너희가 지금까지는 그렇게 들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당시 사람들이 잘못 들어왔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간음하지 말라." 이 말씀이 잘못
되었다는 뜻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 가운데 일곱 번째로
분명하게 기록된 말씀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계명에 자기들의 유전도 전혀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무엇이 잘못이었습니까?
28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볼 때 하나님이 주신 계명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으로 음욕을 품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행위와
결과에만 촛점을 마추어 하나님의 계명을 피상적으로 해석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해석은 당시 사람들을 성적인 방종 상태로 몰아갔습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음욕을
다스리지 못하니까 결국 음욕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음욕
을 해소하기 위해 아주 쉬운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이혼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혼을 아주 쉽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혼을 하면서도 마음 속에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할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 앞에서 남편에게 무안을
주었을 경우도 이혼의 사유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아내가 요리를 하다가 음식을 태웠을 경우나
음식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 짜게 만든 경우도 이혼의 사유가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별의별 사유를 붙여서 아내를 내버렸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에게 이혼증서 한 장만 써주면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런 뒤에 마음에 드는 다른 여자와
합법적으로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당시 사회가 얼마나 성적으로 문란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했겠습니까?
마태복음 19장 9절에 보면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결론이 나와 있습니다.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이 마태 19장 10절에서 어떻게 말했습니까?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이혼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면 장가들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더 낫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마저도 그런 말을
할 정도니까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이혼을 쉽게 생각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보면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에 살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여인에게
"가서 네남편을 불러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여인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대답
했습니다. 아마도 그여인은 그런말로서 자기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삶을 감추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남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그 여인은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아서 다섯 번씩이나 이혼을 했으니
얼마나 이혼이 지긋지긋 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아예 결혼도 포기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해석은 당시 사람들을 성적인 방종 상태로 몰고 가서
도덕적으로 문란한 세상을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을 가리켜서
몇 번씩이나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여" 라고 말씀하시면서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둘째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의 바른 의미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28절 말씀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품고 여자를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예수님은 지금 자신의 권세로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서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말씀 그 자체이십니다.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분도 예수님이시고 선지자들에게 말씀을
주신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이 장차 모두를 심판하실 예수님이 계명의 참뜻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28절 중반부입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마음
에 품은 음욕 자체를 간음이라고 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여자 보기를 돌같이 보라는 뜻입니까?
아니면 여자 앞에서는 눈꺼풀을 땅에 내려 깔고 땅만 보며 다니라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말씀을 통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깨뜨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태 23장 25절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라고말씀하셨습니다.
그들 마음 속에는 음욕이 불일 듯 일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자기들은 간음죄를 짓지도
않고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고 자신을 의롭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의롭게 생각했던 바리새인들이 성전에서 했던 기도의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마음에는 음욕이 불일 듯 일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자기들은 계명을 잘
지키는 자라고 자처하고 있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다른 사람이 눈으로 드러나는 간음죄를 저지를 경우에는 가차없었이 혹독하게
다루었습니다. 그 예가 요한복음 8장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성전에 올라가셔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계실때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한 여인
을 예수님 앞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끌고 온 사람들은 살기 등등한 모습으로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
에서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고 명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여러분, 이 여자를 예수님 앞에 끌고 와서 돌로 치려 했던 자들이 누구였습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몸을 굽히시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
습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묻기를 마지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입을 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그 자리를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서 "외식하는 자들" 이라고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들" 이라고 질책
하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들의 의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로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의는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의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볼때 우리도 역시 다간음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들과는 다른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족과 허물을 잘알고 있기때문에 스스로를 의롭게 생각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리와 같이 애통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혀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는 없는 더나은 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의입니다.
온전한 위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밉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고 살고 있기 때문에 천국의
시민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옷입고 사는 우리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신랑되신 그리스도께서 신부 된 교회를 사랑하시듯이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우리의 아내를
우리의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부부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할 때 너무나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우리의 아내와 남편을 어느 정도로 사랑해야 하는지 살펴봅니다.
29∼30절 말씀입니다. "만일 네오른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 지 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우리는 자녀를 교육시킬 때 당근을 이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채찍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영화로움을 말씀하시면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때로는 지옥의 끔찍한 광경을 말씀하시면서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지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는 말씀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문자적인 의미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두 눈으로 여자를 보면서 두 손을 가지고 여자를 범했다는 것은 실질적인 육체적
음행을 저질렀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한 눈으로만 여자를 보고서 한 손으로만 범했다는 것은 실질적인 육체적 접촉 없이 단지
마음으로만 음행을 저질렀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는
분명할 것입니다. 마음으로도 다른 여자 다른 남자에게 한 눈 팔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내 아내만 내 남편만을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불행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오른눈은 그들을 실족하게 했건만 그것을 빼내버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오른손이 그들을 실족하게 했건만 그것을 찍어버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자기들의 죄를 다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밖에 없게 된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온몸은 당연히 지옥에 던져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장 좋은 아내 가장 훌륭한 남편을 허락해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부부입니까?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어지는 장기려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1950년 12월 6·25 동란 중 평양 의과대학 부속병원 2층 수술실에서 부상당한 국군 장병들을
밤새워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곳에도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어쩔 수 없이 국군
트럭을 타고서 국군 장병들과 함께 황급히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와 또 다섯 자녀와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빛바랜 가족
사진 한장을 가슴에 품고 그 사진을 보면서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혼자 살았습니다.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재혼을 권유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사랑하는 아내가 북에 살고 있습니다.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 그 기다림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이런 말로 거절했습니다.
이렇듯 그는 육체의 하나됨보다는 마음이 하나되는 것을 더 소중히 여겼던 것입니다.
하루는 간호사 가운데 한 사람이 황급히 뛰어 들어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장님 큰일났습니다, 106호 환자가 간밤에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때 장기려 박사는 껄껄 웃으
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도망가라고 문 열어 주었지. 생각해 보시오. 다 나은 사람을 돈이
없다고 해서 붙들고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소? 빨리 가서 땅이라도 파야지. 그래야 그의 가족들이
굶어죽지 않을 것 아니오?" 그는 이런 방법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다섯 자녀들을 보지 못하고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 아침 성탄을 알리는
새벽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시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내가 죽거들랑 나의 비문에는 `주를 섬기다 간 사람`이라고 써 주시오." 라고
남겼습니다. 참으로 소박한 것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주를 섬기며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허락
하신 그의 아내만을 평생토록 사랑한 진정한 그리스도인 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내에 대한 그리고 남편에 대한 우리 모두의 사랑도 이와 같이 소박하고
진정으로 채워져서 가정의 천국을 이루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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