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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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갖고 살아갑시다(We should have a hope in the faith.)

Andy1954 2013. 3. 19. 12:55

제목 :소망을 갖고 살아갑시다

본문 : 예레미야 32:6-15

 

 

2차 세계대전 때 군목으로 참전했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던 맥도날드라는 목사가 독일군 포로수용소

에서 생활할 때, 그 중에 한 포로병이 라디오를 조립해서 수용소안에서 몰래 BBC 방송을 듣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에 그 친구가 맥도날드 목사를 깨워 연합군이 노르만디 상륙작전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은 삽시간에 전 수용소 포로들에게 전해졌고 포로들은 너무 기뻐서 마당으로 나가

얼싸안고 춤을 추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던 독일군들은 포로들의 이상한 행동에 긴장되어 경계를 강화하며 더욱 괴롭혔지만,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이후에 수용소 안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괴롭히고 힘든 일을 시켜도금도 고통스러워 하지 않았고, 도리어 얼굴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곧 전쟁이 끝나고 풀려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을 독일 군인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도 성도들을 세상가운데 내버려 두신것 같지만, 사실은 이 세상이 부러워하고 알지 못하는,

진정한 소망 가운데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배경을 보면, 예레미야가 살았던 바로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주변 강국들의 세력 판도

에 따라 국운이 좌우될 정도로 나약했으며, 또한 여러 재앙이 그치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멸망 직전의 최고

의 암흑기였음을 우리는 쉽게 알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2장을 보면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었으,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힌 바로 그 때입니다. 지금 예레미야가 왜 옥에 갇혀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범죄로 말미암아 조국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시드기야 왕 또한 바벨론으로 잡혀

끌려가게 될 것이니 바벨론에게 대항하지 말고, 항복하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주 절망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에 소망의

메시지를 주시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7-8절에 보면, 네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올

것이니 그의 을 사라,는 말씀이 바로 소망의 메세지인 것입니. 다시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심판의 메세지와, 동시에 구원의 메세지도 함께 주고 계신 것입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정복되어 망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잡혀 끌려가게 될뿐 아니라, 농토는

황무지가 되고, 성과 집은 불타고 헐어져 폐허가 될 것은 뻔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밭을 산다는 것, 얼마나 바보같은 이해못할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더구나 바로 전에 예레미야 자신이 조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깊은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사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멸망

하는 것 같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 다시 회복된다는 것을 알려 주실 예표로 삼기위해서 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메세지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

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에 관한 것으로서, 먼저 심판에 관한 메세지가 전달되어지고

구원에 관한 메세지는 나중에 언급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죄악으로 인해서 심판을 피할수 없으나, 그렇게 비극적인 종말로 그들의 운명이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회복이 불가능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능력으로 구원을 약속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나이 들어 늙고 결국은 세상을 떠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에

하늘의 복스런 소망되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며, 선한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은 세상에서 끝나지 않고, 영원한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있기 때문입

니다. 이것이 믿음을 가진 성도와 세상 사람과 다른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소망을 갖고 살아가야 할줄 믿습니다.

그러면 성도는 어떻게 사는 것이 참 소망을 가진 삶인가, 이 시간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소망을 갖는 것입니.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친척의 밭을 사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같은 계시를 받은 예레미야도 16절이하의 그의 기도에서 당황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밭을 매입하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불신앙적인 것에서 오는 당황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로 헤아릴수 없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즉, 각 개인의 심령을 새롭게 창조하여 하나님을 향해

새로운 생명을 가진 자로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새언약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참으로 순종하기 어려운 이와같은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성경말씀을 통하여 계속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연 우리들은 그러한 말씀들에

대하여 그것이 비록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일지라도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 전부를 내걸고 순종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삼고 살고있다면, 우리의 삶 전부

바치고 헌신하면서 순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삼는다는 것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수 없는 놀라운 소망이며,

그 소망이 결코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한다,고 로마서 5장 5절 말씀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다 알고 계시겠지만 전직대통령이 자살하고, 재벌의 총수가 빌딩에서 뛰어내리고, 당대 최고의 인기

를 누리던 탈렌트가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평범한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 분들의 그런 행동을 이해할수 없을 것입니다. 권력, 돈, 명성 모든 것을

가지고 누리며 살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겐 진정한 의미의 소망이 없었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썩어 없어질 이 땅의 것을 소망으로 삼았기 때문에 참된 삶을 누릴수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천지와 만물울 창조하시고, 영원토록 변개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고 있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9절을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함께 복을 받는다,고 하고 있습

니다. 믿음과 순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순종할 수 있습니다.

 

2. 약속에 대한 확실한 증거인 성령충만을 받는 것이,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밭을 구입하게 하신것은, 잠시 후에 이 땅이 멸망당하지만 장래에는 포로에서

귀환하여 반드시 이 땅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리라는 약속을 보여 주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절망하지 않고 소망 중에 기쁨으로 살려면,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실한 증거를 믿어야 합니

. 우리에게 주신, 그 증거가 무엇일까요? 그 증거는 바로 성령입니다.

부활하신 우리 예수님께서 소망을 잃고 실의에 빠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받으라' 고 말씀하셨습

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하늘 소망을 볼수 있었으므로,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

증거하고 전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예수님의 12제자들의 대부분이 순교를 당한 사실

이 이를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고후1:21-22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라,했습니.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확실한 증거인 성령으로 충만할때, 믿음이 굳건해지고 하늘의

소망을 가질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요일5:7-9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했습니다. 이처럼 마음에 성령을 가지면, 천국의 기쁨의 넘치고 아무리 힘

들고 어려워도 힘과 소망이 칩니다.

또한 롬15:13"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

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망을 갖는 것도 나의 의지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임할때 가능한 것입니다. 

 

3. 주님의 구속사역과 재림의 주님을 믿는 것이,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15절에서 다시 사게 되리라,의 사다는 댓가를 치르고 얻는다,는 뜻으로 대속,구속의 의미까지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그 땅의 소산물에 의해, 삶을 윤택하게 하며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락을 향유할 유업의 상속권

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약속의 땅을 매입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밭을 산 사건은 장차 예루살렘이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예언하신 하나의 예표였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였다는 말씀입니다.

12절에 보면, 인봉치 않은 매매증서를 증인의 앞뿐만 아니라,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공개함으로서 예레미야

가 밭을 산 사실을 공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루살렘이 장차 회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 앞

에서 확인하여 줌으로  절망과 실의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복의 소망을 줄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더욱 풍성하려면 우리의 소망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며, 공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보여지고 있는 초대교회의 모습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모든 것을 서로 나누며, 베풀며 생활하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할찌라도, 이 땅을 떠날때 가져갈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 어리석은 한 부자의 비유가 나오지 않습니까?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고 있음을 한번쯤 되세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재물은 어느정도는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결코 행복하거나, 영원한 하늘의

소망을 가졌다고 할수 없는 것입니다. 내 것이라고 해서 내 배만 살찌우는 자는 결코 천국백성이 될수 없는

것입니다. 소망은 나누며, 인내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때 더욱 더 풍성한 소망과 즐거움

가운데 하게 됩니다

 

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죽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보면, 사도바울도 만일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는 저 영원한

세상,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바보스럽게 보일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사실수 있기를 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시요, 전지 전능하시며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래서 이제는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소망의 밭을 소유하기를 원하는 것입니.

죄악과 유혹이 관영하는 어두운 세상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면서 또 성령 충만함으로 무장

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중에 기다리며, 순례자의 길을 살아 간다면,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크신 하나

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영광이, 날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나고 보여질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