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히브리서 11장 5∼6절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는 천국이라는 본향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순례자들입니다.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천국의 열쇠가 없으면, 우리의 인생 길은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천국의 열쇠는,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천국의 열쇠는,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천국 문을 여는 열쇠를, 결코 얻을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하루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빌립보 가이샤라 지방에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때 베드로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베드로 한 사람에게만, 천국의 열쇠를 주신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베드로와 같은 신앙을,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든지 천국의 열쇠가 주어집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3장16절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든지 영원한 생명이 주어집니다.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가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천국의 열쇠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믿음은 절대적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에녹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이 사실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에서 에녹의 믿음을, 세 단계로 나누어서 설명을 했습니다.
역순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첫째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졌습니다.
둘째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습니다.
셋째로, 에녹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에녹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 결과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어, 우리들도 에녹과 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웠습니다.
5절 상반부의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의 이름을 들을 때, 언뜻 머리에 연상되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 하면 "노예 해방"이 연상이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스데반하면 "천사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하면 "눈물의 선지자"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오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에녹이라 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연상이 됩니까?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운 사람"이 연상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창세기 5장에 보면, 아담 자손의 계보가,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의 계보가, 일정한 틀에 의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각 사람의 일생을 마무리할 때는, 언제나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가 몇 세를 살고 죽었더라." 이 말로 끝맺음을 합니다. 그런데 에녹만큼은 예외입니다.
창세기 5:24절의 말씀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그렇습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운 사람입니다. 엄청난 복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에녹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옮기운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였습니까? 선지자 엘리야였습니다. 왕하 2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엘리야가 그의 제자, 엘리사와 더불어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홀연히 하늘에서, 불수레와 불말들이 나타났습니다. 두 사람 사이를, 떼어 놓았습니다.
그러더니 엘리야는 회리바람을 타고서, 하늘로 올리워졌습니다.
요단강 맞은편에서, 이 모습을 보던 선지 생도들은, 엘리야가 승천했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회리바람에 휩쓸려 올라갔다가, 어디엔가, 그 시체가 땅에 떨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엘리사를 강권하여, 엘리야의 시체를 찾기 위해, 용사 오십 인을 보냈습니다.
사흘동안이나 엘리야의 시체를 부지런히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하늘나라로 인도해 가셨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리운다는 사실은, 일반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너무나도 극적인 사건입니다. 에녹은 그 엄청난 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리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일깨워주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믿음으로"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사망이, 왕 노릇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에 매여서, 더 이상 종노릇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망의 권세는, 결코 우리를 삼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망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들도
사망의 권세를 이미 이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사망을 향해서 담대하게 외칠 수가 있습니다.
고전15:55절의 말씀입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7절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물론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 순간적으로 사망의 관문을 지나갑니다.
그러나 사망은, 단지 우리를 영원한 본향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관문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 있을 동안에, 예수님께서 영광가운데, 구름타고 다시 오신다면,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운 것처럼, 우리 모두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우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옮긴다"는 단어가 세 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에녹이 스스로 옮겨 다닌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에녹을, 천국으로 옮기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에녹의 삶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의 삶을 인도해주시고,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에녹을, 천국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도, 반드시
영화로운 천국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습니다.
5절 하반부의 말씀입니다.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경의 대소요리문답은, 공히 이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대답은 이러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Men`s chief end is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
에녹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을, 달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습니다.
아울러 사람이 누구를 기쁘게 한다는 것은, 언제나 상대적인 일입니다.
자기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기쁘기는커녕, 오히려
귀찮을 수도 있습니다. 영적인 견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열심히 구제를 하고, 기도도 하고, 금식도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기쁘시게 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못했습니다.
그런데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자라"하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정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우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에녹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까? 유다서 14절∼15절의 말씀입니다.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에녹은 아담의 칠대 손이었습니다. 경건한 셋의 후예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몹시도 타락했습니다. 노아의 홍수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에녹은, 동시대 사람들의, 경건치 않은 일과, 경건치 않은 말을 정죄하면서,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며, 죄악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똑같이 아담의 칠대 손으로서, 불경건한 가인의 후예가 있었습니다. '라멕' 이었습니다.
그는 창세기 4:23∼24절에서, 자기 아내들을 향해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에녹과 똑같은 시대의 사람이었던 라멕은, 자기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뽐내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비웃고 있습니다.
이 라멕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야발'과 '유발'과 '두발가인' 이었습니다.
'야발' 은 가축치는 자의 조상이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풍성했을 것입니다.
'유발' 은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자의 조상이었습니다. 육신적으로 감미로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두발가인' 은 구리와 쇠로, 여러가지 기구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기계 문명이 발달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은 하나님을 떠난, 죄악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타락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 에녹은, 세상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세상과 벗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300년동안이나, 하나님과 더불어서,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아벨은, 그의 믿음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 곧 예배드리는 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에녹은, 믿음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그는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나타났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Sunday Christian"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명목적인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Everyday Christian"이었습니다.
에녹은 날마다 매순간마다,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삶으로, 그의 믿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해 주신 것입니다.
에녹은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에녹은 '죄'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의'에 대해서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에녹은 '육신'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오직, '영'에 대해서 산 사람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두운 이 세상, 부패한 이 세상에 물들지 맙시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우리도 에녹처럼, 날마다 매순간마다,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써 우리들도, 에녹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에녹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가진 것이 없어도, 배운 것이 없어도, 인물과 배경이 없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믿음이 없으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에녹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습니다.
그 결과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영화로운 천국으로, 옮겨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에녹의 믿음의 내용은 어떠했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에서 에녹의 믿음을, 두 가지로 요약을 했습니다.
첫째, 에녹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은 것입니다.
둘째, 에녹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은 것입니다.
믿음의 첫 걸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믿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죄도 짓고, 나쁜 짓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사람은, 인생을 함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 함부로,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일성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도 인색하다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하게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우리가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녹은,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에서, 그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300년동안이나 변함없이,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어떠한 상을 주십니까?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을, 반드시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리고 죄를, 사하여 주시고, 하늘의 평강도, 주십니다
마음 속에, 구속의 은총과, 기쁨과 감격을 허락해주십니다.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주십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삶도 주십니다.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주시는 상들입니다.
우리는 로마서 8:32절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 때문에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슬퍼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 때문에, 세상에서 고난을 당했다면, 우리는 오히려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실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에녹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면서, 날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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