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인생·전도서

지혜자의 얼굴은, 광채가난다.(전도서 8장 1-17절) (Wisdom brightens a man's face.)

Andy1954 2024. 5. 7. 03:02

오늘은 전도서 8장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과연 악인이 흥왕하고 의인이 고통

받는 것이 용납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한번쯤 가져 봤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럴 때에 조금만 더 깊이 하나님의 말씀인 묵상 한다면, 그와 같은 의문은 곧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역사를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는 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처벌이 곧바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근본적인 여러 섭리와 예정 가운데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의 결국은 파멸과 죽음으로 끝난다 고 결론짓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솔로몬은 지혜자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자를 가리켜 "사물의 이치를 아는자"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물의

이치를 알기 때문에 사리에 맞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우매한 사람은 사물의 이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모하게 처신하곤 합니다.

이어서 지혜자에게 나타나는 특징 중의 하나는,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한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stephen) 집사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하는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때 스데반 집사가 눈을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면서,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계신것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은 잠시후 예수님이 두팔을 벌리시고 자기를 품에 안으시며

위로해 주실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때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환하게 빛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자의 모습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형통한 일을 맡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하면서 기뻐합니다.

그리고 곤고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도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그 얼굴이 빛을 잃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다릅니다. 잠언 14장 29절을 보면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쉽게 노를 발할 뿐 아니라, 작은 일에도 쉽게 얼굴이 일그러지곤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26절에서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분을 오랫동안 품지 말라고 말씀

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얼굴이 지혜로운 자의 얼굴처럼, 은혜의 광채로 빛나게 되시기

바랍니다. 근심, 걱정, 어두운 그늘이 다 사라지고, 언제나 은혜가 충만한 밝은얼굴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어서 솔로몬은 지혜로운 사람이 사리에 맞게 처신하는 모습을 세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왕의 그릇된 명령 앞에서, 지혜로운 사람의 처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요즘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국왕 제도를 가진 나라들이 있습니다. 나라에 따라서 왕에게 많은

권세가 주어지는 경우도 있고, 어떤 나라는 왕이 그저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본문의 말씀을 기록할 당시는, 왕이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왕의 말 한마디가 신하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던 때였습니다.

신하가 왕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마땅한 도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왕으로 세움을 받을 때에 하나님 앞에서 왕과 백성 사이에 서로 언약을

맺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왕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합니다.

왕의 통치에 복종하겠다고 맹세했으면, 마땅히 신하는 왕의 명령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것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신하가 왕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신하가 생각하기에, 불합리하고 그릇된 명령을 왕이 내릴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리 자기 생각과 다른 명령을 왕이 내린다 할지라도, 신하가 얼굴을 붉히면서 듣기 거북

하다는 듯이, 왕 앞에서 급히 물러가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며, 왕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왕이 싫어하는 것 왕에게 해가 되는 것을 꾀해서는 안됩니다.

왕을 배반하고 반역하는 것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합니다. 왜 그런 것을 해서는 안됩니까?

왕에게는 절대 권력이 주어졌기 때문에,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열왕기상 1장에 보면, 다윗 왕이 나이 들어 늙었을 때 '아도니야' 가, 자의로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겠다 고 계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아도니야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도니야는 즉시 달려가서 제단의 뿔을 꽉 잡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큰 죄인이라도, 제단의 뿔을 잡기만 하면 벌할 수 없었습니다. 

아도니야가 제단의 뿔을 쥔채 솔로몬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기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살려주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네가 선하게 살면 너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려니와, 그러나 만일 네 속에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 왕이 명령을 내렸으면 아도니야가 지혜롭게 처신을 했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아도니야가 어리석었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간청했습니다.

다윗 왕을 모시고 있던 수넴 여자 아비삭을 자기에게 아내로 달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말입니까? 아무리 그여자가 아름답고 자기 마음에 들어도 그런말을 할

없습니다. 선왕의 여자를 아내로 삼는다는 것은 왕위를 계승하기 전에는 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솔로몬이 듣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아직도 '아도니야'의 마음에 왕위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자기 이복형이지만 가차 없이 처단했습니다.

이와 같이 왕의 손에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일 수도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왕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왕의 명령이 비록 자기 귀에 듣기 거북하다 할지라도, 왕 앞에서 급히 물러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습니다. 왕을 배반하고 악한 것을 꾀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안전하고 화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신하가 생각할때 도저히 왕의 명령을 이해할수 없는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거기에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시기와 판단을 잘 분변 합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행동으로 처신한다 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니엘(Daniel)과 세 친구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 왕, 네부카드네자르"3년 동안, 내가 주는 진미와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훈련을

받아라."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로, 자기

들의 몸을 더럽히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개적으로, 왕이 하사하는 음식을 거부하면, 왕명을 어기는 셈 이 되니까,

목숨이 위태롭게 되지 않습니까? 그때 다니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다니엘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감독하는 자를 찾아가서 이런 제의를 했습니다.

왕이 주는 포도주와 진미 대신에 채식과 물을 달라고 했습니다.

열흘 동안 시험해서, 그 결과에 따라 감독자의 좋을 대로 처분하라고 했습니다.

 

3년 가운데 열흘은 별것도 아닙니다. 감독자가 다니엘의 제안을 좋게 여기고 수락했습니다.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자기가 대신 취하고,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는 채식과 물을 주었습니다.

열흘 동안의 시험기간이 끝났습니다.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세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서 그들의 얼굴이 다른 동료 소년들보다

윤택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친구는 음식으로 자기들의 몸을 더럽히지 않을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운 사람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행동을 취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시기와 판단을 분변 하지 못하고, 

무모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화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장차 얼마나 큰 화를 당하게 될지 깨닫지 못합니다.

 

다윗왕이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서 도주할 때의 이야기가 사무엘하 16장에 있습니다.

길가에 시므이(Shimei)라는 사람이 나타나 온갖 독설을 퍼부으면서 다윗왕을 저주했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쫓아가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다윗이 만류했습니다. 살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죽을 때 솔로몬에게 시므이를 눈여겨 보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어 시므이를 불렀습니다. "너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지만, 선왕 다윗이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했기 때문에 너를 죽이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제부터 너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예루살렘 안에서만 살아라 라고, 솔로몬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시므이가 그것을 좋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시므이가 어떻게 했습니까?

3년이 지났을 때쯤 시므이의 종 두 사람이 도망쳤습니다. 그때 시므이가 아무런 생각 없이 나귀에

안장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도망간 두 종을 쫓아가서 데리고 왔습니다. 

왕의 명령을 어기고 예루살렘 밖으로 나간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갔다가 돌아온 거니 괜찮겠지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왕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시므이는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장차 당할 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지 못합니다.

 

솔로몬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왕에게 권세를 부여하셨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왕이 사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왕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권세에 순복 하는 사람들은 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권위를 무시하고 왕의 명령을 거역하게 될 때는 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3장 1∼2절에서 그것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모든 권세들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 권세를 인정하고 권세에 복종

해야 합니다.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곧 하나님과의 약속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부모의 권위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자녀가 보기에 부모가 온전하지 못할 수도 있고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녀가 부모를 거역하면 되겠습니까?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교회 내에서 질서를 무시하거나 분쟁을 일으키는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교회 중에 세운 직분에 대해, 세우신 권위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괴롭히며 죽이려 하는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24장 6절을 보면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는 것이라, 고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또, 예레미야 23장과 에스겔 3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세움을 입은 자가 바르지 못하거나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그 사람과 그 집을 버리시고 벌 하시겠다 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나라의 지도자든, 교회의 지도자든, 가정의 어른이든지 간에 그권위를 인정하고 웃어른을

잘 섬겨야 합니다. 이같이 행하는 것이 바로 지혜로운 길이며, 이때에 우리 마음에 참 평화를

누릴 수 있고, 우리 얼굴에 광채가 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둘째로. 이 세상의 모순된 현실을 볼 때, 어떻게 처신해야 지혜로운 것입니까?

우리 사회에서 인정하는 정통적이고 상식적인 사상과 지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 자가 잘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악한 사람이 벌 받고, 잘 안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그렇지 못하지 않습니까?

계속해서 악을 행하는데도 죽지 않고 벌 받지 않고, 오히려 잘 살고 형통하다는 것입니다.

악을 행해도 속히 벌 받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겁 없이 악을 행하더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모순된 일입니까? 오히려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악인이 잘 되고 형통합니다.. 

이런 모순된 현실을 보면서 여러분은 결론을 어떻게 내리시겠습니까? 

잠시 이 땅에서 잘살기 위해서 악을 행하겠습니까?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그렇습니다.

잠시 잠깐의 낙을 누리기 위해서, 영원한 형벌을 자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악한 일의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는다고 해서, 악을 행하는 인생을 살아가시겠습니까?

왜, 이 땅에 심판이 속히 임하지 않습니까? 디모데전서 2장 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로 하여금, 멸망치 않고 회개하는 자리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금도 오래 참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형통하십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곤고한 일을 당하셨습니까? 그 가운데도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생각하시고,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중에도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감사했던 사도 바울처럼, 우리들도

늘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의 본향은 영원한 하늘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를 이 세상에 잠시 머물도록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례자와 같은 마음으로, 인생을 사실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하라, 는 하박국 선지자처럼, 

우리 모두도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감사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가 얼마가 되든지 간에, 우리의 수고하는 중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얼마든지 수고의 낙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인생의 참된 희락은 외적인 것이나 환경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구조적 모순이 팽배한 이세상에서 가장 즐겁게 최선으로 살아가는 길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대로 먹고 마시며 삶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먼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알고자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그오묘하신 섭리와 역사를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깨달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에서 지혜를 추구하며 세상사를 탐구하기 위해 불철주야로 애써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 할 지라도, 그것도 능히 깨닫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은 그만큼 무지하고 한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연약한 지혜와 인간의 노력

에 위해서 깨달아 지거나 해결될 수 있는게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에 의해서만 알고

깨달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절대자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인간이 자기 욕심에 따라 꾀를 부리고 수작을 부리기 때문에, 

문제가 꼬이고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대로 살면, 인생은 누구나 구원과 영생을 얻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잃어버린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늘의 상급이 더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수 없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영원한 것을 바라볼 때 이세상의 잠시 잠깐인 것은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편 50편 21절에, 하나님이 악인을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죄를 미워하시며 반드시 죄를 심판하시고, 죗값을 치르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의 무지함과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더 경외하며 의지할 때에,

하나님의 거룩함과 위대하심을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 경배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더욱 사랑하고, 말씀을 더욱 묵상하면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갈 때에 우리의

얼굴이 지혜자의 얼굴처럼 광채가 나고 은혜 충만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