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소위 여론을 조성하는 사람이나 매체가 있게 마련입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살펴보면 지난 시대에도 대부분 식자층이나 부유층 권력층의 주도로 여론을 조성하곤
하였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는 대중매체를 장악하고 SNS,TWITTER, FACE BOOK등을 이용하여 여론을 만들어 가고
있으며,이렇게 만들어진 여론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여론을 조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기 관리와 이권을 위해서, 모든 것을 자신들의 평가기준에 대입하여, 다른 사람들을 평가
하고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잣대로 예수님을 평가하여 예수는 하나님께 속한자가 아니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 몰아부치는 참으로 어리석고도 유치한 여론을 만들어 갔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18-19절을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이러한 이중 잣대를 훤히 들여다 볼수 있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율법적인 엄격한 생활 방식을 비판 했을뿐 아니라, 예수님의 더 개방적인 삶의 양식까지도
싸잡아 둘다 비난하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을 비판할 때에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평가해서도 안되며, 자기의 인기관리나 이권을 위해서 남을 악평해서는
더 더욱 안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편가르기를 하지않으며, 자기에 속하지 않았다고, 자기와 견해가
다르다고 비판하지도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다른 생각과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보훈에서, 너희가 비판을 받지아니 하려거든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러시면서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보고,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나무라시면서,
자기 자신을 먼저 살피지 못하거나 뒤 돌아 보지 않는것은 외식하는 것이라고 질책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올바른 판단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과 방법이 올바르다면,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기준에 너무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기준과 방법은 오랫동안 신뢰와 지지를 받을수 있으나, 임기 응변식이거나 인기 몰이식의
평가와 기준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시대는 자기 P.R 시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알리는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이제는 한계를
넘어 중독 증상까지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얘기는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얘기에 관심 없음도 무시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얘기를 듣기 싫어 하는 것도 개의치 아니하고, 끊임없이 과대 포장된 자기
피알(PR)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안타까운 모습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인정 받거나, 세워지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주어지고 맡겨진 일을, 묵묵히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침묵하는 다수가 항상
그 사회를 이끌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때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성경은 우리
에게 가르치며 교훈하고 있습니다.
"No action, Talk only", 란 말이 있습니다. 말만 무성하고, 실행이 없음을 빗대어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서로 상대방을 인신공격하거나, 네가티브한 점을 부각시켜 비판만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너 나 할것 없이 완벽한 사람이 없습니다. 헛점과 부족한것 다 가지고 있습니다.
허물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게 인생 입니다.
그러나 그런가운데에서 서로의 장점을 발견할수 있고 훌륭하고 좋은점도 찾을수 있다면, 함께 긍정의 삶을
만들어 갈수 있는 소망을 가질수 있을 것입니다. 남을 깍아 내리는게 아니라 세워 주는 자세가 필요 합니다.
그러면 자신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요즘 뜨고있는 소통보다 더중요한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남이 나를 세워 주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요, 내가 먼저 남을 세워 주십시다,
남이 나를 비판하기를 멈추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요, 내가 먼저 비판하기를 멈추면 됩니다.
비판을 멈추고 세워 주는일 어렵지 않습니다, 시간을 끌거나 기다릴 이유도 없습니다.
내가 먼저 지금 시작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속에 희망의 체인이 저절로 만들어 집니다.
로버트 해리의 시 "지금 하십시오"가 생각 납니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지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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